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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정일 (대한문화재연구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6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75 - 10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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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사람이 거주했던 취락의 등장과 변화과정을 살펴봄으로써 해남지역의 마한사회 변화과정을 살펴보는데 있다. 해남지역은 다섯 개 권역으로 나뉘고 주거구조와 출토유물을 통해 취락을 6단계로 구분하였다. Ⅰ단계는 기원전 3세기 전후시기로 군곡리패총 형성 이전의 환호취락을 들 수 있다. 유물은 원형점토대토기이다. Ⅱ단계는 기원전 2세기에서 기원후 1세기로 군곡리 원형주거지 단계이다. 유물은 삼각형점토대토기, 경질무문토기 등이다. Ⅲ단계는 기원후 2세기에서 3세기 전반경으로 현재까지 주거지는 미확인되며 유물은 경질무문에 타날문토기가 증가한다. Ⅳ단계는 기원후 3세기 중반에서 4세기 중반까지이며 지역별로 거점취락이 등장한다. 취락 내에는 화재폐기가 있고 가야계유물이 들어온다. Ⅴ단계는 기원후 4세기 후엽에서 5세기 중반까지이다. 유물은 다양한 외래계토기가 유입되지만 묘제에 집중되는 경향이다. Ⅵ단계는 기원후 5세기 중반에서 6세기대 까지 이다. 묘제에 비해 주거지 흔적은 찾아보기 힘들다. 해남지역의 마한취락은 환호취락의 등장, 읍락으로 성장, 거점취락 등장과 급격한 쇠락의 과정을 보이고 있다. 취락의 등장은 Ⅰ단계의 환호취락으로 백포만의 현산천권역에 한정되며 연해항로의 길잡이, 물자보급 등의 해촌 성격의 취락이다. 읍락은 기원후 3세기(Ⅲ단계) 까지 이며 소촌 단위의 원형계 주거형태의 마을이 백포만 일대에 집중되며 기원후에는 마한계 방형주거지로 정착된다. 군곡리 일원은 다양한 대외 교역망을 가진 해상교류의 전초지로 중간 기항지의 성격을 가진 마한 소국 수준의 읍락으로 성장한다. 이러한 취락은 3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단일지역에서 벗어나 여러 군집 단위로 취락이 성장하고 있다. 이런 배경은 철기의 유통, 대외교류 등을 기반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취락의 성장은 4세기 중·후반 화재폐기 등의 원인으로 급격이 쇠락한다. 화재폐기의 원인은 다양하지만 근초고왕의 남정 기사의 근거 자료 중 하나로 추정해 볼 수 있다. 영산강유역의 전통적인 묘제인 제형분이 해남지역에서 4세기 중반을 기점으로 변화되는 것도 위와 같은 원인이 작용한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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