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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순화 (원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요가학회 요가학연구 요가학연구 제15호
발행연도
2016.1
수록면
89 - 120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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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의 연구 히스토리 (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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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의 목적은 해탈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제의적인 까르마의 실행을 강조하는 행위 중심주의자의 논지를 비판하는 데 있다. 수레쉬와라의 독립저서인『나이스까름야싯디』에서 “해탈은 영원하며 브라흐만 자체이고, 어떤 까르마의 결과도 아니다.”라는 점을 강조하고 있다. 해탈은 오직 지식을 수단으로 이루어질 수 있을 뿐 ‘말, 마음, 몸의 행위’를 통해서는 결코 이루어질 수 없다는 점을 밝히면서, ‘까르마 중심주의 이론’과 ‘지식과 까르마 공조론’의 불합리성을 강하게 비판하고 있다. 미망사학파의 까르마와 아드와이따 베단따학파의 지식이 야기하는 대립구도는 해탈의 목적에 따라 수단과 본질에서 서로 양립할 수 없다. 지식은 자신의 역할을 수행함에 있어 독립적인 반면에 까르마는 행위자, 수단, 결과에 의존적이다. 지식은 결과를 즉각적으로 생성하지만 까르마의 결과는 예측할 수 없는 시기에 발생한다. 미망사에서 까르마는 ‘사람에 의존하는 것’인 ‘명령적인 진술’로 정의되며 명령은 ‘완수되어야 하는 것’이다. 까르마는 반드시 까르마로서 경험되어야 한다는 점을 밝히고 있다. 반면 수레쉬와라는 해탈의 최우선 과제로 무지의 제거를 내세운다. 이는 그 무지야말로 ‘덧놓음에 물들여 있는 것으로서 인간이 가지고 있는 실존의 고통이자 모든 해악의 원인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수레쉬와라는 해탈의 직접적인 수단으로 그 어떤 일체의 까르마도 용납하지 않고, 다만 해탈의 원격/외적 수단으로서 까르마의 중요성을 강조한다. 따라서 NS는 일체의 어떠한 까르마도 해탈의 수단이 아니며 ‘브라흐만=아뜨만’(brahmātmaikya)이란 지식만이 그 수단이라는 샹까라의 전통을 재확인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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