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영범 (고려대학교)
저널정보
민족어문학회 어문논집 어문논집 제79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5 - 33 (29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개항 이후 구한말까지 조선에서는 근대적 국가를 향한 언어적 기획이 진행되었다. 그것은 비주류 집단까지 '국민'으로 아우르려는 작업이었다. 그러나 일제에 의한 국권 침탈은 '국가의 언어'가 설 곳을 잃게 했다. 남은 것은 '민족의 언어'였다. 어문민족주의의 영향 아래 1930년대 전반기에는 <한글마춤법통일안>이 제정 되었고, 후반기에는 조선문학이 괄목할 만큼 성장하였다. 하지만 '국가' 없이는 '어문의 표준화'나 '문화의 발전 정도'가 의미를 가지기란 어려웠다. 카프가 해산되고 만주사변이 발발하면서, 일제는 이전과는 확연히 다르게 압박해왔다. 임화는 카프 해산을 계기로 이러한 압박과 그것이 조선에 미칠 영향력에 눈뜨게 되었다. 그가 비평에서 내세웠던 '국제주의'와 '민족주의'의 길항은 조선문학을 세계문학의 일원이 되도록 하려는 노력의 결실이었다. 조선문학의 미래가 거기에 있다고 믿었던 것이다. 따라서 그의 문학론은 '민족 부르주아지'의 언어가 장악하고 있던 당대 조선문학에 대한 이의제기였다고 할 수 있다. '민족 부르주아지'는 임화에게 자기 계급을 위해 민족을 '참칭'하는 이들이었다. 임화가 계급방언과 지역방언을 거부한 까닭은 그가 염두에 두었던 시민적 문학을 위해서였다. 그에게 전자는 시민계급을 '개별화'하여 분열시키고, 후자는 '봉건적 격리의 유물'일 뿐이었다. 심미성과 실재성을 사상해버렸다는 점에서 그의 언어관은 분명 문제적이다. 그러나 현대인을 자처했던 임화의 '근대적 통일어'는 미래를 정향하고 있었지, '과거로의 회귀'에 초점을 맞추고 있지 않았다. 그의 판단으로 후자는 파시즘에 포획될 위험에 노출되어 있었다. 1930년대 후반 황국신민화정책은 조선어와 조선문학의 목을 옥죄었다. 이 시기에 임화가 발표한 일문 평론들에는 자신이 견지해온 이론에 대한 부정과 일본 문인들의 이론적 지원에 대한 요구 등이 보인다. 그만큼 상황은 심각했다. 임화가 시민계급의 '근대적 통일어'를 도모하게 된 것은 해방정국에서였다. 그가 요청했던 시민계급의 언어가 '국가의 언어'였다는 사실이 밝혀지는 것도 바로 이때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