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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수진 (한성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고대학회 선사와 고대 선사와 고대 제57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5 - 25 (2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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갈문왕은 신라에서만 등장하는 독특한 ‘왕’이다. 한 명을 제외하면 모두 상대에만 존재했다. 법흥왕 이전까지 신라는 ‘왕’을 사용하지 않았음에도 ‘왕’을 칭한 것이다. 본고의 목적은 갈문왕이라는 왕호가 언제, 어떤 배경에서 성립했는지를 알아보는 것이다. 갈문왕의 자격은 세 가지이다. 첫째는 왕비와 왕모의 아버지, 둘째는 왕의 아버지, 셋째는 왕의 동생이다. 이중 첫째의 사례는 후대에 일괄적으로 추봉된 것으로 생각된다. 왕비와 왕모의 아버지는 오직 왕비와 왕모의 아버지 자격으로만 ‘갈문왕’으로 등장하며, 갈문왕으로 추봉된 기록도 없기 때문이다. 일괄 추봉의 시점은 국제정세, 부자세습의 확립, 실성마립간 어머니의 아버지가 갈문왕이 아닌 점 등으로 미루어보아 눌지마립간대가 유력하다. 특히 눌지마립간 19년의 역대 원릉 수즙은 앞선 왕계의 정리가 전제되어야 가능한 일이었기에, 이 시기가 추봉의 기점이 될 수 있다. 둘째의 사례는 아버지에 대한 추봉(혹은 추봉제도)으로 보았다. 일성이사금 15년 박아도를 갈문왕에 추봉한 이후 왕의 아버지를 갈문왕으로 추봉하는 사례들이 나타난다. 일성이사금은 아버지의 계보가 모호했고, 첨해이사금의 경우 강력한 경쟁자가 존재했으며, 미추이사금은 김씨로는 처음 왕위에 올랐다. 모두 정통성의 확보가 필요했다. 일성이사금대 시작된 아버지에 대한 추봉은 점차 자리를 잡았다. 갈문왕의 사용시점을 찾아가다 보면 매금 ‘왕’의 사용, 즉 왕호가 사용된 시점도 추정할 수 있다.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서 차이를 보이는 마립간의 사용시기 등은 추정의 근거가 될 수 있다. 이런 변화는 왕자지배의식의 확립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앞서 언급한 눌지마립간대의 여러 조건은 왕자지배의식이 확립될 수 있는 기반이 되었다. 갈문왕은 신라의 왕호 사용과도 밀접한 관련을 갖으며, 그 배경에는 왕권의 성장과 왕자지배의식의 확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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