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민경선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김다빈 (국립가야문화재연구소)
저널정보
한국고고학회 한국고고학보 한국고고학보 제109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06 - 141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김해 봉황동 유적은 김해시의 남쪽에 위치하며, 봉황대 구릉과 주변 평탄면 일부 지역을 포함하고 있다. 봉황동 유적은 금관가야의 고도로 주목되어 온 가야의 대표적인 생활유적이다. 북쪽에는 대성동고분군이 위치하고, 남쪽은 고김해만을 접하고 있다. 1907년 회현리패총의 발견, 조사를 시작으로 현재까지 봉황동 유적 주변 일대는 70여 차례의 발굴조사가 이루어졌다. 구릉 외곽으로 패총과 고상건물, 접안시설 등이 확인되었고, 구릉 동편 평탄면 일대에서는 토성지를 비롯하여 주거지 등 생활 유구들이 조사되었다. 최근 봉황토성지 내부, 구릉 북동편 평탄면 구역의 금관가야 왕궁 추정지에 대한 발굴조사가 진행 중이다. 이 구역에서는 길이 10m 이상의 대형 건물지가 여러 기 확인되고 있는데, 이는 동시기 다른 건물지에 비해 초대형이다. 또한 제의행위가 있었던 것으로 보이는 원형의 수혈이 다수 중복된 양상으로 확인되었다. 유물은 생활용 토기류도 다수를 이루고 있지만, 기대, 소형토기와 토우 등 위세적인 성격과제의적인 성격을 띠는 유물도 다수 출토되었다. 바다를 조망하는 유적의 입지와 함께 확인된 고고자료를 통해 본 김해 봉황동 유적은 단순한 취락 유적이라기보다는 제장(祭場)의 기능을 포함하고 있는 특수한 목적을 가진 장소였을 것으로 추정된다. 또한 금관가야 지배층이 사용했거나 지배층을 위한 공간일 가능성이 크며, 금관가야의 핵심지역이었음은 분명해 보인다. 다만 현재까지 조사된 고고자료는 극히 일부에 지나지 않아 유적을 해석하는 데 여러모로 한계가 있다. 지금까지 확보된 자료를 통해 확인한 유적의 특징을 토대로 하여, 앞으로 조사가 더 진행되면 유적의 성격을 보다 명확히 밝힐 수 있을 것이라 기대된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