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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윤정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상사학회 한국사상사학 한국사상사학 제59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1 - 39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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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화가 체결된 이후 반세기 가량의 시간이 흐르며 고려-원 관계는 정치외교적으로 긴밀해졌을 뿐만 아니라, 양국 사이에는 전례없이 많은 인적・물적 교류가 이루어졌다. 고려는 원 중심의 국제 질서 속에서 호복(胡服)과 호례(胡禮) 등 다양한 원의 문화를 수용하였고, 이는 계층과 연령을 넘어 고려사회에 널리 확산되었다. 하지만 1320년 충선왕의 토번 유배를 시작으로 국왕의 압송과 억류, 심왕(瀋王) 옹립 운동, 중조(重祚)의 반복, 5차례의 입성(立省) 책동 등 국가의 위기로 이러한 상황은 전환되기 시작하였다. 고려는 일련의 사안들을 단순한 정치적・외교적 분쟁이 아닌, 고려에 대한 부정으로 인식하며 강력하게 대응하였다. 국가의 보존을 주장하는 고려측의 논리는 원의 번방(藩邦)으로서 고려의 역할을 강조하며 그들과의 유대감을 강조하는 한편, 과거 쿠빌라이의 ‘불개토풍(不改土風)’ 약속을 내세워 ‘원과 문화가 다른 고려’, 즉 ‘풍속부동(風俗不同)’의 고려를 강조하는 방향으로 전개되었다. 국가 위기의 상황 하에서 고려의 문화 정체성인 ‘국속(國俗)’에 대한 고민과 재인식이 이루어졌고, 이는 원의 복식문화에 대한 태도 역시 바꾸게 되었다. 더욱이 충목왕 즉위 이후에는 사회적 혼란을 타개하기 위한 개혁 논의가 본격적으로 이루어졌다. 이제현(李齊賢)・이곡(李穀) 등 성리학자들은 당시의 상황을 국속이 훼손되어 사회기강이 무너진 것으로 파악하고, 유교적 풍속 개혁 작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이들은 과거의 폐정(弊政)을 개선하기 위한 방안 가운데 하나로 원 문화가 지나치게 확산된 것을 문제로 제기하였다. 이에 원의 복식문화는 전대(前代)의 악습(惡習)이자, 사치스럽고 사회기강을 흐리는 것으로 여겨지며, 점차 개혁의 대상이 되었고, 공민왕 즉위 이후 지양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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