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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강근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백산학회 백산학보 백산학보 제110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201 - 230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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궁궐건축 연구에서 부닥치는 문제 가운데 난제는 ‘용어의 애매성’이다. 관찬 사서를 기록한 사관이 중국의 經史를 섭렵한 官人 학자들이었기에 그들의 문장 속에 儒家的 세계관이 배어 있다. 특히 寢殿 관련 용어에는 聖君으로서의 君主에 대한 견해가 반영되어 있다. 침전 앞쪽에 별도로 마련된 小寢殿은 朝會에서 물러 나온 뒤에도 寢殿에 들지 않고 소침전에서 올바른 정치를 펼 방도를 궁구하는 성군에게 필요한 시실로 이해되었다. 정도전이 燕寢인 康寧殿과 便殿인 思政殿 사이에 小寢인 延生殿과 慶成殿을 좌우에 마주 보도록 배치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또 강녕전은 王과 王妃의 침실을 갖춘 일상생활의 장소인 燕寢인 동시에, 王室儀禮를 거행하거나 승지와 대신들을 接見하고 政事를 의논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 사전적으로 정의하면 六寢은 왕의 침전 영역, 六宮은 왕비의 침전 영역을 뜻하지만, 둘 다 路寢(正寢) 1채와 小寢(燕寢) 5채를 앞뒤로 배치한 구성으로 똑같이 설명되어 있다. 그런데 이는 연침과 소침을 구별하여 경복궁 창건 설계에 반영한 것과 맞지 않기 때문에, 조선시대 전반기 경복궁 침전 사용방식을 이해하는 데 혼란을 일으킨다. 正寢이란 용어의 경우 사전적 정의와 실제 건물 사용 사이에 모순이 발견된다. 국가 의례서인 『오례의』에서 ‘正終의 장소로서의 정침’을 思政殿으로 기록하고 있지만, 실제로 사정전을 정침으로 삼은 예는 심지어 한 번도 없었다. 正終의 장소로서 경복궁 康寧殿을 정침으로 삼은 경우는 문종 사후가 유일하였고, 창덕궁 대조전은 성종, 인조, 효종, 철종, 순종 등 다섯 임금의 사후에만 정침으로 사용되었다. 史書와 번역서에서 말하는 연침과 소침, 육침과 육궁, 노침, 정침 등 조선왕조의 궁궐 침전을 서술하는 데 핵심적으로 사용된 용어들은 아이러니하게도 조선시대의 역사상 실재한 침전의 현실을 제대로 반영하지 못할 뿐 아니라, 후대의 연구자들을 혼란에 빠뜨리는 주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음을 이제 주목할 필요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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