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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길기태 (국가기록원)
저널정보
백제학회 백제학보 백제학보 제27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7 - 5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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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세종지역에는 673년이란 특정시점에 다수의 佛碑像이 조성되고 있다. 이 불비상은 이전에는 발견된 바 없는 石碑형식으로, 「계유명아미타삼존불비상」과 「계유명삼존천불비상」이 그것이다. 계유년인 673년은 신라가 백제의 사비지역에 소부리주를 설치한 이후로, 이 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보한 것으로 이해된다. 그렇다면 이 지역에 대한 신라의 영향력이 행사되던 시기로 볼 수 있다. 그런데 아미타불비상의 명문에는 백제의 관등인 達率이 보인다. 명문에 보이는 지식 및 향도들이 모두 신라의 관등이 사용하고 있는데 반하여, 유일하게 보이는 것이다. 이는 여전히 백제의 신앙적 영향력이 남아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백제의 신앙적 영향력이 지속되고 있었다면, 이는 아미타신앙의 성격을 통해 살펴볼 수 있다. 아미타신앙은 죽음에 대한 인간의 본능적인 두려움에서 출발한 것으로, 나라의 멸망과 전쟁을 통하여 백제의 유민들이 느꼈을 암울한 현실을 투영한 내세지향적 성격을 내포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같은 시기에 동일한 지역에서 발견되는 천불비상은 아미타불비상과는 다른 성격을 보여준다. 천불비상에는 신라적 요소인 香徒란 용어가 사용될 뿐만 아니라 백제의 관등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무엇보다도 천불비상의 성격이 현세를 부처의 정토로 구현하고자 하는 의지가 강하게 투영하고 있다는 점이다. 그리고 당시 신라의 아미타신앙이 현세적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는 점도 고려해 볼 수 있다. 그렇다면 천불비상의 조성에 신라의 영향력이 포함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이처럼 같은 시기에 동일한 지역에서 백제의 내세지향적 신앙과 신라의 현세적 정토구현의 신앙이 혼융되어 나타나는 것은 통일정국이라는 점과 더불어 이 지역이 가지는 지정학적 특성도 반영한다. 현재의 세종지역은 군사 및 교통의 요충지이며, 당시 신라가 당과의 전쟁을 수행하고 있었던 점을 고려할 때 그러하다. 따라서 신라가 계유년인 673년에 세종지역의 불비상 조성에 영향력을 행사한 것은 이 지역이 가지는 지정학적 위치를 고려하면서 나당전쟁에 대한 포석도 함께 생각하고 있었던 것으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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