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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박민선 (일본군'위안부'문제연구소)
저널정보
숭실사학회 숭실사학 숭실사학 제4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83 - 318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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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는 만주사변에 이어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을 차례로 일으키며 침략전쟁을 확대해 나갔다. 전쟁이 장기화됨에 따라 일제는 병력 충원에 어려움을 겪게 되었고, 이를 해결하기 위해 식민지 조선인을 인적자원으로 확보하고자 하였다. 그 결과, 1937년 12월 「陸軍特別志願兵令」의 시행이 결정되었고, 이듬해 2월 「朝鮮陸軍特別志願兵令」이 공포되었다. 조선총독부는 이 제도를 통해서 전방에서는 조선인을 “戰線의 皇國軍人”으로 동원하였으며, 후방에서는 조선인에게 “銃後의 皇國臣民”으로서의 자각을 강요하는 데 활용하였다. 이를 위한 기초작업으로 선전활동과 사상통제에 모든 역량을 집중하였다. 이와 함께 총독부는 일본의 ‘軍神’의 사례를 참고하여 조선에서도 전쟁영웅을 만들고, 전쟁 참여를 위한 선전도구로 활용하였다. 전시체제기 조선인 ‘전쟁영웅’의 사례로는 李仁錫, 李亨洙, 池麟泰, 崔鳴夏, 金錫源, 李鍾贊, 嚴柱明, 柳寬熙, 印在雄, 韓鼎實 등이 있었다. 이들 중 李仁錫은 육군특별지원병 최초의 전사자라는 상징성을 가진 인물로 총독부가 내세운 대표적인 조선인 전쟁영웅이었다. 일제는 이인석을 지원병이라는 이름 하에 전쟁에 동원하였고, 전사 후 그의 생애와 죽음까지도 미화·조작하여 전쟁을 선전하는 데 또다시 동원하였다. 이 과정에서 ‘兵農兩全論’이라는 담론을 선전논리로 결부시킴으로써 ‘모범적인’ 국민과 ‘영웅적인’ 병사로서 대변되는 바람직한 조선인의 모습을 일반에게 강요하였다. 요컨대 일제는 이인석을 통해서 전방에서 병력을 동원하고, 후방에서 전쟁총동원이라는 측면과 함께 조선인에게 皇國臣民이라는 자각을 강요하기 위한 수단으로 적극 활용하고자 하였다. 한편 이인석 전쟁영웅화 작업에 대해 당시 조선사회에서는 순응·협력·저항 등 다양한 양상이 나타났다. 특히 총독부의 선전의도에 부합하여 이를 동조하거나 협력했던 조선인이 있었지만, 일부 조선사회에서는 일제의 의도를 정확하게 이에 반발한 사례가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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