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엘리 (중앙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외국어대학교 역사문화연구소 역사문화연구 역사문화연구 제78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3 - 48 (4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에서는 성남시 옛 사찰 법륜사의 위치를 비정하고, 창건과 폐사까지 법륜사의 역사를 고찰하였으며, 남아 있는 법륜사의 문화재를 추적해 보았다. 현재 법륜사는 역사 속으로 사라진 사찰이지만, 조선시대에 왕실과 연계된 사찰이었고, 조선 후기 광주부를 대표하던 사찰이었다. 하지만 19세기 말 이규승이 제작하여 법륜사에 봉안한 <신중도>와 <감로도>만이 현재 서울 <지장암 신중도>와 <지장암 감로도>라는 이름으로 남아 법륜사의 실재를 증명해주고 있을 뿐이다. 현재 남아 있는 두 불화의 가치를 부여하고, 성남시 불교문화의 한 단면을 복원해 보고자 사라진 사찰 법륜사에 관하여 고찰해 보았다. 성남시 탄리사지(태평동사지)로 명명되는 지역을 법륜사지로 확정하였다. 창건 시기는 인조대 또는 숙종대로 추정된다. 인조대 창건설에 무게를 두고 분석하면 법륜사는 영창대군의 원찰로 창건되었을 가능성이 있다. 법륜사는 19세기 말 이규승이 평원·제안대군의 사손이 되면서 두 대군의 제향 공간으로 기능하게 되었다. 이때부터 법륜사는 이규승과 이용호 부자의 원조를 받으며 운영되었다. 1916년 이용호가 사망하자 그의 묘사로 쓰이다가 지원이 끊겨 폐사의 수순을 밟게 되었다. 1939년에 사찰 자산과 신도가 서울 창신동 지장암으로 이전하면서 폐사되었다. <지장암 신중도>와 <지장암 감로도> 외에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된 범종이 법륜사의 문화재임을 살필 수 있었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