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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현승 (井岡山大學)
저널정보
동아시아고대학회 동아시아고대학 동아시아고대학 제57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05 - 236 (3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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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 다루는 명대 말기의 유학자 유종주(劉宗周, 1578-1645)는 그의 제자 황종희(黃宗羲)의 『명유학안(明儒學案)』에 의해 양명학파로 분류되었지만, 실상은 주자학적 경향과 양명학적 경향이 모두 엿보이는 유학자였다. 따라서 단순히 황종희의 주장에 근거하여 양명학자로 단정 짓기에는 부적절하다. 그것은 유종주가 보인 주자학 계열의 동림파에 대한 인식과 태도에서 잘 드러난다. 그는 동림파에 대해 매우 긍정적인 인식과 태도를 취했으며, 심지어는 적극적으로 그들의 주장을 옹호하고 지지하는 당대의 명망 있는 유학자였기 때문이다. 동림파는 송대 강소성 무석(無錫)에 건립된 동림서원이 그 기원이며, 명대 말기에 이르러 고헌성(顧憲成, 1550-1612)과 고윤성(顧允成) 형제 및 고반룡(高攀龍, 1562-1626) 등에 의해 개축되었다. 그로부터 이 서원을 중심으로 당시의 유교 지식인들이 끊임없이 모여들었는데, 이곳에서는 유교적 학술 및 정치적 비판 담론이 활발히 이루어졌다. 이로 인해 명대의 조정에서는 이들을 위험한 시선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었고, 마침내는 정치적 탄압이 시작되어 그 유명한 동림당 사건이 발발한다. 따라서 이 논고에서는 주자학적 담론을 중심으로 지역의 여론과 정치적 의견을 과감히 피력한 동림파 인사 및 동림당 사건에 관하여 황종희에 의해 양명학자로 분류된 유종주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한 양상이었는지 등에 대하여 검토하였다. 즉 당시 유종주가 동림파 인사에 대해 어떠한 인식과 태도를 취했는지에 관하여 일련의 동림당 사건, 더 구체적으로는 ‘이삼재(李三才) 사건’에 근거하여 분석, 고찰하였다. 또 여타 동림파 인사와의 적극적 교유에 의한 결과 등에 대해서도 분석하였다. 이어서 또 다른 동림당 사건의 하나로 기록되고 있는 ‘강웅(姜熊)의 옥(獄)’과 관련하여 그 전개 양상 및 유종주의 인식과 태도가 어떠했는지 등에 대해 고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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