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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인호 (동의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민족운동사학회 한국민족운동사연구 한국민족운동사연구 제99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5 - 56 (5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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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바로 「부산사업체 150년사DB」를 활용하여, 오늘날 광복동(벵텐쵸, 고토히라, 니시마치, 사이와이마치) 지역의 사업체 및 대표·중역 등을 분석하여 개항 이후 일제강점기 광복동 지역에서 生老病死를 했던 사업체(회사, 조합, 공장)의 유기적, 기술적 구성 실태와 중역진의 지연 중심적 결속 상황을 확인하는데 목적을 두었다. 이상 분석하여 다음과 같은 결과를 얻었다. 개항기 광복동에는 제조업, 생산재 산업보다는 농림, 금융, 상업 회사가 많았고, 모두 일본인 소유였다. 인근지역까지 조선인이 주도하는 회사는 한 곳도 없다. 공장의 경우도 광복동 지역 소재 19개 공장 중에서 주조장, 장유양조장, 정미소, 연초제조소, 제면소 등 11개소로 니시마치에 집중되었다. 일제강점기 광복동 지역 155개 중에서 지점은 7개사, 본점은 148개사(벵텐쵸 55개사, 니시마치 54개사, 사이와이마치 40개사)였으며, 20년~30년대 설립이 활발했고, 30년대 이후 해산이 설립보다 많았다. 이것은 벵텐쵸는 1924년 이후 그리고 니시마치는 1929년 이후 회사 설립이 활발했으나 30년대 이후 폐업이 잦은 것은 매립지역 특히 좌천정이나 범일정 등에 신흥 회사, 공장이 설립되면서 상대적으로 광복동이 위축된 결과도 있지만 전시체제 아래서 불어 닥친 각종 경영난, 물자난 등도 중요한 원인이었다. 같은 기간 일본인 이주 규모가 커지지 않는 것도 경기동향과 관련된 듯하다. 지역별로 벵텐쵸에는 주식회사나 합명회사가 많았고, 합자회사는 사이와이마치에서 많았다. 광복동 일원에는 고토히라쵸의 부산신탁이나 벵텐쵸의 오쿠로난카이도와 같은 합자회사가 주식회사보다 규모가 컸다. 1940년 이후 유한회사 10개사가 설립되었는데, 벵텐쵸에는 항공기재료배급이나 용기회수소 같은 전시통제체제 아래서 형성된 배급, 회수 관련 유한회사가 많았다. 벵텐쵸 55개 기업체에서 유일한 조선인회사가 1932년 벵텐쵸 5정목 44번지에 설립된 山上時計商會(합자)였다. 본래 林淸次라는 조선인이 운영하였으나, 1935년 조사까지 일본인 회사로 분류되었다가 1937년부터 조선인회사로 바뀐 복잡한 사연이 있다. 벵텐쵸 소재 55개 기업 중에서 DB상에 중역 상황을 보여주는 회사는 40개인데, 외국인은 4명 있었지만 조선인 중역은 단 1명도 없었다. 이처럼 개항기 및 일제강점기 광복동 지역에서 영업한 회사들이 가지는 공통된 특징은 지점을 제외하고, 본점은 대체로 소규모 합자회사 형태가 많았다. 이는 장기적으로 규모있는 상공업으로 성장하는데 주식회사보다 효과적이지 않았다. 정작 어업이나 교역을 주도할 만한 기업이 없는 상황에서 금융, 부동산, 상업 중심으로 운영되었고, 무엇보다도 광복동 소재 회사들이 대부분 설립이 된지 얼마 되지 않아 대부분 해산하였다. 공장의 경우는 이미 개항기나 1910년대 설립된 공장이 대부분이었다는 점에서 회사동향과 다르다. 이들 공장은 정미, 장유, 양조, 연초 등 생활필수품과 관련하여 1930년대까지 지속적으로 존속하였다. 특이한 것은 니시마치에 1934년경 조선인이 최초로 영세한 a규모지만 공장을 설립한 점이다. 이상의 경제적 분석을 통해서 당시 광복동의 일본인사회가 가지는 특징을 추론하면 다음과 같다. 즉, 개항 및 일제강점기 광복동 지역은 일본본토인은 물론 조선인에게조차도 융합하기 어려웠던 ‘재조선 일본인 쁘띠부르주아’만의 배타적 공간이자 그들만의 애환이 반영된 동족부락이었다. 자본은 영세하고, 민족적 고독감이 위요한 가운데, 식민통치기구의 시혜와 작은 자본에도 지속할 수 있는 저렴한 소비문화를 결합하여 자기만의 독자적 생존 공간을 만들면서 마침내 광복동 일대는 ‘희귀한’ 재조일본인 특유의 문명공간으로 성장하였다. 그런 조선내 재조일본인만의 ‘비지’가 바로 광복동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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