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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고태우 (서울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사회사학회 사회와역사 사회와역사 제12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49 - 88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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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은 식민지 조선에서의 광범위한 개발 욕구(‘아래로부터의 개발’)가 진정과청원 등 주민들의 집합행동으로 발현된 상황을 ‘개발운동’으로 지칭하고, 그것의전개 과정과 성격을 1920년대를 중심으로 검토한 것이다. 1910년대부터 재조선인이 주축이 된 공직자와 자산가층에서 식민지 개발을 위한 주장과 운동을 전개했다. 집회·결사의 자유가 부분적으로 허용된 3·1운동 이후에는 조선인들도 더욱 개발에 본격적으로 가담하기 시작했다. 기성회, 번영회와 같이 각지의 발전을 목표로하는 사회단체가 연이어 탄생했으며, 일반 민중의 진정서가 관청으로 쇄도했다. 개발운동은 1910년대보다 1920년대에, 1920년대 전반보다 1920년대 후반에 훨씬 활발했다. 1920년대 후반 진정활동이 급증한 이유는 ‘산업제일주의’를 표방한조선총독부의 토목건축정책에 각 지역사회가 적극적으로 대응했기 때문이다. 또한1920년대 개발운동은 공직자와 말단 행정가들이 지역을 대변하고 주민들의 이해관계를 관철해야 한다는 분위기 속에서 진행되었다. 이렇게 광범위한 개발에 대한열망은 제한된 예산과 공공재 분배 과정에서 지역 공동체 간의 연합과 경쟁, 갈등을 유발했다. 식민권력은 개발운동의 ‘범람’에 일정하게 대응할 필요가 있었다. 식민권력의 정책 목표와 예산 사정이 지역사회의 끈질긴 운동과 부합했을 때 비로소 개발사업이 실현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대부분의 진정과 청원은 사실상 대의제도가 부재한 식민지 정치구조 속에서 정책에 반영되지 못했다. 의회를 통해 일정하게 민의가 수렴된 일본과 달리, 개발을 둘러싼 이권과 이해관계가 조정되지 못한 식민지 조선인들의 불만은 계속 축적될 수밖에 없었다. 이는 식민통치에 불안 요소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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