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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유영봉 (전주대학교)
저널정보
우리한문학회 漢文學報 漢文學報 제41권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75 - 202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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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朝鮮王朝實錄』에 수록된 江漢 黃景源(1709~1787)의 卒記 가운데 일부를 보면, “또한 답습하는 데에서 큰 잘못이 생겼으며, 詩도 공교하지 못해 식자들이 한스럽게 여겼다.”라고 하여, 칭찬의 말미에서 슬쩍 강한을 깎아내렸다. 그러나 이런 약점에도 강한은 300수 가까운 시들을 문집에 남겼다. 강한은 「도담창화시에 붙인 서문[島潭唱和詩序]」의 앞부분에서“나는 젊었을 적에 海州 吳瑗 伯玉과 宜寧 南有容 德哉 두 사람을 따라 단양군으로부터 도담에 들어가 강가에서 잠을 잔 적이 있다. 두 사람은 문장을 잘하고 산수를 좋아하여, 밤중에 강 한복판으로 배를 끌고 가 띄웠다. …… 이윽고 운을 내어 詩歌를 짓고 서로 唱酬하여 古詩와 絶句ㆍ律詩 도합 20편을 이루었다. 시어의 정밀하고 거칢과 辭의 완만하고 촉급함이 비록 서로 같지 않았으나, 모두 性情의 진실함에서 나온 것이라서 彫琢이나 修飾을 한 것이 아니었다.”라고 하였다. 바로 이 언급에 주목한다면, 강한이 평생에 걸쳐 고시를 위주로 창작한 것은 당연한 귀결이라고 하겠다. 완강한 외형적인 틀 안에 彫琢이나 修飾을 가하는 것이 근체시의 특징인 까닭이다. 아울러 강한은 산수를 노래한 景物詩에 다음과 같이 무게를 얹었다. “예로부터 詩歌는 많고 성대하지 않음이 없었으나, 산수의 즐거움을 다하여 오묘함을 잘 드러낸 작품은 얼마 되지 않는다. 지금 두 사람은 문장으로 사방에 이름이 알려졌고, 산수에 대해서 사랑하지 않는 바가 없다. 그 가운데 도담의 삼봉을 더욱 사랑하였으니, 시가로 표현하여 산수의 오묘함을 형용한 것 역시 훌륭하다. 나 경원은 비록 어리석고 비루하여 두 사람과 비교하기에는 부족하다. 그러나 두 사람이 문장에서 나와 선후를 다투는 것을 즐겨하니, 어찌 聲氣가 感通한 바 있어서가 아니겠는가.” 강한에게 오원과 남유용은 平生의 知己였다. 대등한 문장 솜씨로 이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지만, 역시 산문에서는 강한이 두각을 드러냈다. 이에 비해 두 친구는 운문에서 남음이 있었으니, 그 여파로 강한은 살아서부터 운문이 아쉽다는 평을 들었던 것이다. 이에 강한은 고문가로서의 명성에 걸맞게 형식과 수사적인 부분에서 보다 자유로운 古詩를 선택하였을 것이고, 평소 자신의 작품을 남에게 내보이길 꺼렸으리라 짐작된다. 연유에서 그는 근체시 형식을 위주로 하는 和韻詩나 挽詩의 創作을 가능한 한 기피하였을 것이다. 그렇지만 젊은 나날에 여행 중의 아름다운 풍광을 보고 느낀 순간적인 충격은 기꺼이 고시의 양식에 담았다고 여겨진다. 요약하면, 강한은 고문가답게 형식적으로는 고시 형식을 선호하였다. 그리하여 ‘史才’ 넘치던 인물답게, 역사를 소재로 삼은 辭와 영사시의 창작에 기량을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두 편의 聯句詩에서 보여주는 문학적인 순발력을 기반으로, 젊은 시절에 자신의 소신에 따라 긴 호흡으로 山水詩와 紀行詩에 주력한 인물이라고 할 수 있겠다. 바로 이런 점들이 강한만의 독특한 시세계이자, 강한의 시들이 지닌 고유한 가치라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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