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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원석 (전남대학교)
저널정보
한림대학교 태동고전연구소 태동고전연구 태동고전연구 제46권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27 - 150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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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대표적 관료 문인인 성현(成俔, 1439-1504)은, 송대(宋代)의 소식(蘇軾, 1037-1101)이 관직생활 초기 조정에 제출했던 ?왕자불치이적론(王者不治夷狄論)?을 모방하여 ?왕자불치이적(王者不治夷狄)?을 지었다. 그는 소식의 글의 제목과 소재를 그대로 가져오되 그것과는 구별되는 독자적 관점을 제시했다.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은공(隱公) 제2년 기사인 “은공이 잠(潛) 땅에서 융(戎)과 회합했다”에 대해, 동한(東漢)의 하휴(何休, 129-182)는 “왕은 이적을 다스리지 않는다”라고 주석했다. 이 주석이 의미하는 것은, 쇠란의 시대에 노나라 은공이 이적을 다스릴 겨를이 없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소식은 이에 대해, 이적은 교화가 전혀 불가능한 존재이므로 왕은 이적을 다스리려는 헛된 노력을 할 필요가 없다고 해석했다. 그 대신, 왕은 중원의 문명국[中國]이 이적의 문화에 의해 오염되지 않도록 노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왕은 이런 목적을 위해 때로는 이적과 회합하는 실용적 행위도 할 수 있으며, “은공이 잠 땅에서 융과 회합했다”는 것은 왕의 이런 행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소식은 해석했다. 그에게서 이적은 정치적 실체를 지닌 타자로 인식되지 않은 것이다. 성현 역시 이적을 교화 불가능한 존재로 간주한다는 점에서 소식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성현은 소식과 달리 이적을 위협적인 정치적 실체로 간주하였으므로 “은공이 잠(潛) 땅에서 융(戎)과 회합했다”는 경문에 대해 소식처럼 해석할 수 없었다. 그에 따르면 은공이 이적과 외교적 회합을 했던 까닭은 이적의 정치적?물질적 욕구를 일시적으로 충족시켜 줌으로써 궁극적으로 국가의 안전을 도모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이러한 왕의 정치 행위를 “덕치”로 정당화한다. 성현이 이 글을 쓰던 시기에 조선은 강경책과 회유책을 써 가면서 북방의 여진족을 적극 관리하고 있었다. 이러한 시대적 상황으로 인해 성현은 『춘추공양전(春秋公羊傳)』의 은공(隱公) 2년 기사에 대해 소식과 달리 해석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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