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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황아영 (성신여자대학교)
저널정보
한국한문고전학회 漢文古典硏究 漢文古典硏究 제42권 제1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33 - 156 (2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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荷潭 金時讓(1581~1643)은 조선 중기 청백리로 이름난 문신이다. 宣祖 14년(1581)에 태어나 壬辰倭亂을 겪으면서 부모님을 여의고, 선조 38년(1605년)에 문과에 등제하면서 光海君과 仁祖를 모셨다. 하담은 임진왜란과 丁卯胡亂, 丙子胡亂과 같은 국가적으로 어려운 시기를 보내면서 시, 필기와 함께 많은 산문 작품을 남겼는데, 그 중 산문 작품들에 관한 연구는 아직까지 미진한 상태이다. 하담의 문학관을 알기 위해서는 시와 필기뿐 아니라 산문 작품에 관한 연구도 이루어져야 하는 것은 당연하다. 따라서 본 논문은 하담 김시양의 산문에 나타난 주제의식을 살펴보는 것을 목표로 한다. 하담은 임진왜란과 병자호란을 겪으면서 이전까지 옳다고 여겼던 성리학이 무너지고 소중화라 자부하였던 가치관이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음을 목도하였다. 일반적인 서민, 하층민이었다면 그것에 대한 기대가 크지 않았을 것이고, 높은 관직에 있는 사대부였다면 성리학과 소중화라는 사상만을 중시하였을 텐데, 김시양은 사대부이지만 유배지에 머물러 있는 상황이었기에 당시의 상황과 현실을 객관적으로 보고 평가할 수 있었고, 이후 인조대에 관직에 돌아와 여러 중요한 임무를 맡으면서 유연한 사고와 대처를 강조하였다. 또한 김시양은 임금과 신하로서의 태도에 대하여 자주 언급하였는데, 특히 임금에게는 강한 임금을 요구하였고, 신하에게는 책임감을 강조하였다. 임금은 임금으로서의 威儀를 가지고 나라를 어지럽히는 소인들을 두렵도록 다스려야 하며, 신하는 임금에게 간하는 것을 중히 여기고 자신이 맡은 일에 강한 책임감을 가지고 임해야 함을 여러 번 언급하였다. 그리고 하담은 자신이 맡은 직책과 임무에 관하여 최선을 다하고 있음에 대한 높은 자신감과 자부심을 표출하기도 하였다. 그러하기에 하담은 자신의 의견을 당당하고 떳떳하게 주장할 수 있었고, 진퇴에 관하여도 소신껏 임금에게 아뢸 수 있었다. 이는 하담이 공과 사를 철저히 구분한 점과도 관련이 있다. 공적인 일에 관한 글은 물론이고, 친구와 주고받은 글에서도 공과 사를 구분하여 글을 적고 있음이 잘 나타난다. 이와 같이 하담의 산문 작품은 시와 필기와는 또 다른 주제의식을 가지고 있음을 알 수 있다. 본 연구에서는 하담의 산문을 중심으로 살펴보았지만, 하담 김시양은 조선 전기의 전통을 계승하면서 중기의 여러 가지 대내외적 영향을 받아 시, 산문, 필기 문학에서 다양한 글쓰기를 선보인 인물이므로 다각적 접근의 과정을 거친 뒤에 김시양 문학에 나타난 통일된 가치관과 의식을 읽어낼 수 있을 것이며, 이를 통해 17세기 그리고 조선 중기 문학사에서 김시양의 문학이 차지하는 위상과 의의를 밝혀낼 수 있을 것이다. 이 연구를 통해 조선 중기 사회와 문학에 대한 이해가 풍성해지길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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