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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신혜선 (경북대학교)
저널정보
영국사학회 영국 연구 영국연구 제45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1 - 33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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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언약도는 찰스 2세의 주교제주의적 종교정착과 비국교도 박해에 맞서 ‘성전’을 결심하였다. 국왕을 상대로 한 전쟁에서 그들이 내세운 명분은 폭군에 대한 무력저항과 자기방어를 정당화하는 ‘저항이론’이었다. 언약도의 저항이론은 엘리트 계층 내에서 담론의 장을 형성하였고, 주교제주의자들과의 논쟁 과정에서 ‘민중(popular)’의 저항이라는 개념으로까지 발전하였다. 이후 언약도는 필요에 따라 의도적으로 저항이론 팸플릿을 유포하고 조직적으로 군중들을 선동하기 시작했다. 야외집회와 머켓크로스는 그들의 저항이론을 민중들의 실제적 삶의 공간으로 끌어들일 수 있는 최적의 장소였다. 그 결과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 사회에서는 반정부적 군중소요들이 빈번하게 일어났다. 1666년 펜틀랜드 반란과 1679년 보스웰 브릿지 전투는 언약도 저항이론과 사회적 군중소요의 상관관계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건이었다. 이는 그야말로 ‘이론’의 실제적 ‘적용’이었다. 결국, 언약도의 저항이론 선전전은 스코틀랜드 사회에 종교적 논쟁의 장을 활성화 시키고 나아가 이를 실제적 민중운동으로 이끌어내는 데 성공하였다. 이러한 의미에서 17세기 후반 스코틀랜드에서의 사회적 군중소요의 성행은 언약도가 남긴 저항이론의 유산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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