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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류병재 (단국대학교)
저널정보
한국몽골학회 몽골학 몽골학 제62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67 - 210 (4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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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중국 하남성(河南省) 녹읍현(鹿邑縣) 태청궁(太淸宮)은 도가(道家)의 창시자인 노자(老子)의 탄생지로 잘 알려져 있다. 이 태청궁 경내에는 ‘카이도(Qaidu, 海都)’라는 인명(人名)이 기록된 《海都太子令旨碑》라는 비문이 있다. 본 연구의 목적은 1257년 카이도가 발령한 《海都太子令旨碑》에 기록된 영지(令旨) 대한 역주작업을 진행하고, 그 내용의 분석을 통해 청년기 카이도의 상황과 당시 그의 주요거점이었던 중앙아시아의 카얄릭(Qayaligh) 지방과 중원 내지와의 관계를 고찰해 보는 것이다. 이 비문 내용을 근거로 청년기 카이도의 상황을 『원사(元史)』 등의 한문 사료와 『집사(集史)』 등의 페르시아 자료 등과 비교해 보았다. 이 비문의 분석을 통해 카이도에게 ‘태자(太子)’라는 신분 칭호가 있다고 하여, 그가 멍케와 쿠빌라이 등 톨로이 가문의 사람들과 대립 관계를 세우려던 ‘정통 유목형 황금씨족(Altan Uru??)’의 대변인이었을 것이라는 예단(豫斷)은 옳지가 않다. 청년기 카이도는 대칸의 권위를 인정하고, 대칸에게서 배정 받은 현재 중국 하남성 일대의 지역을 장악하고 대칸으로부터의 은사(恩賜)를 받던 칭기스칸의 황금씨족들 가운데 일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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