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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백두산 (서울시립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연극학회 한국연극학 한국연극학 제1권 제77호
발행연도
2021.1
수록면
99 - 151 (5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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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1905-1917년 서울지역 극장자본의 형성, 극장 흥행산업의 규모, 연예집단의 운영, 흥행세 관련 자료를 대상으로, 극장업을 중심으로 식민지 초기 흥행시장의 형성과 연예계의 역사적 구성과정을 살피는 연구이다. 대한제국 후기 경제상황의 분석을 바탕으로 본고에서는 한미전기회사의 극장관련 회계자료를 분석하며 초창기 극장업의 채산성을 분석하였다. 다음으로 대한제국 후기부터 1910년대 초기 조선인 대중극장에 관여하였던 흥행자본가들의 인적사항과 극장업 진출 상황을 분석하여 초기 흥행자본의 규모와 극장별 특수성을 논의하였다. 극장흥행업이 안정화되기 시작한 것은 신구파 전문극단의 출현을 배경으로 대관 중심으로 극장영업이 재편되어 상업자본가들이 극장업에 투신하였던 1913년 경부터였다. 특히 신구파 직업극단을 주관하였던 총무들은 전문흥행사의 역할을 맡았다. 본고에서는 1912-1914년 박승필의 광무대 활동 중 대중매체의 활용 전략중심으로 초창기 연예계의 형성 징후를 살펴보았다. 1910년 이후 일본인 극장자본의 극장업 진출은 식민지적 극장자본 중심의 재편을 가속화했는데, 1914년 경성부 특별세로 마련된 흥행세제는 대극장에는 유리하였고 대관단체에게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조세였다. 일본계 자본 중심의 활동사진 사업과 대극장 규모 사업으로 편성되는 과정에서 영세자본 상태에 있었던 조선인 대중극장들은 영업중지 처분 이후 극장업에 투자하지 못하였고, 대전경기 호황으로 인한 한성 대중극장의 특수는 일본계 극장을 중심으로 한 일부 극장만이 누릴 수 있었다. 1910년대 중반 이후 신구파 단체의 해산과 조선인 극장업의 침체는 근본적으로 흥행자본의 식민지적 재편이 큰 이유로 제기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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