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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김일환 (서울장신대학교)
저널정보
한국기독교역사연구소 한국기독교와 역사 한국기독교와 역사 제55호
발행연도
2021.9
수록면
5 - 38 (34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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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존의 연구에서는 이수정이 1882년에 임오군란이 일어났을 때 명성황후의 피신을 도와준 공로를 인정받아서 일본에 가게 되었다고 서술하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이수정의 신분에 대해서는 연구자에 따라 국왕과 친분이 있거나 선략장군, 승문원 교검, 관상감의 역관, 홍문관 제학, 승정원 승지, 통리외무아문 협판 등으로 다양하게 서술했다. 이것은 주로 일본의 자료나 선교사들의 자료를 사용하여 내린 결론이었다.
그러나 이수정이 명성황후를 구출했다는 이야기는 한국의 자료에는 전혀 나타나지 않는다. 그가 상당한 관직에 있었고, 명성황후를 구출할 정도의 중요한 일을 했다면 그의 이름조차 기록되지 않은 것이 오히려 이상한 일이다. 심지어 명성황후의 피난생활을 자세히 기록한 『임오유월일기』에도 이수정의 이름은 발견되지 않는다. 이것은 이수정이 명성황후를 구출한 공로가 없음을 보여주는 증거라고 할 수 있다.
이수정의 관직에 대해서 살펴보면 『승정원일기』와 『고종실록』에 있는 수많은 관직 임명 기록 중 어디에도 이수정이 관직에 임명되었다는 기록은 없다. 오히려 박대양의 기록에 의하면 이수정은 민영익의 겸인이었다. 조선시대의 겸인은 양반가나 부호의 집 사무를 맡아보던 사람을 지칭했다. 19세기에는 학문적인 교양을 갖추기도 해서 주인이 속한 사족들과 같은 취향이나 의식, 생활양식 등을 가지기도 했다.
따라서 이수정이 임오군란 당시 명성황후의 피신을 도왔다는 것과 그의 신분과 관직에 대한 기존의 견해는 수정되어야 할 필요가 있다.

목차

Ⅰ. 머리말
Ⅱ. 이수정의 도일 과정에 대한 기존의 서술
Ⅲ. 이수정의 공훈(功勳)과 신분 및 관직에 대한 재검토
Ⅳ. 맺음말
참고문헌
한글초록
Abstract

참고문헌 (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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