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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맹문재 (안양대학교)
저널정보
한국시학회 한국시학연구 한국시학연구 제67호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39 - 71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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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에서는 김수영 시인의 출생에서부터 조양유치원, 계명서당, 어의동 보통학교, 선린상업학교, 일본 유학까지의 연보를 정리해보았다. 김수영 연보의 토대를 마련하는 데 선구적인 역할을 한 최하림의 『김수영 평전』, 김수영 연보의 정본이라고 볼 수 있는 이영준이 엮은 『김수영 전집』(1-2권), 답사를 통해 기존 연보의 틈새를 보완한 박수연 외 7인 공저인 『세계의 가장 비참한 사람이 되리라』를 참고했다. 아울러 김수영의 부인인 김현경의 증언과 진명여자고등학교 졸업증명서 및 학적부, 김수영의 제적등본 등을 근거로 삼았다.
김수영은 1921년 11월 27일 서울시 종로2가 158번지에서 아버지 김태욱과 어머니 안형순 사이에서 셋째 아들로 태어나 장남으로 자라났다. 1924년(4세) 조양유치원 과정을 마치고 계명서당에 들어가 한문 공부를 했다. 1928년 어의동 보통학교(현 서울효제초등학교)에 입학했는데, 1934년 가을운동회에 참가했다가 바나나를 먹고 몸이 아파 졸업식에도 참석하지 못했다. 김수영은 겨우 건강을 회복하고 1935년 선린상업학교 전수과(야간)에 입학했다. 1938년 3년제 전수과를 졸업한 뒤 본과 2학년으로 진학해 1941년 졸업했다. 김수영은 1942년 초 일본으로 건너갔다.
김수영은 선린상업학교의 선배인 이종구의 하숙집에서 함께 생활하며 조후쿠(城北) 고등보습학교에 들어가 공부했지만, 대학입시에 합격하지 못했다. 그 뒤 유학 생활에 드는 비용을 고향 집으로부터 조달받기 어려워 조후쿠 고등보습학교에 등록하지 않았고, 그 대신 연극 공연장, 영화관, 서점 등을 찾아다니고 시를 쓰기 시작했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으로 전선을 확대하면서 1943년부터 조선 학생들에게 학도지원병 제도 및 징용제를 시행했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김수영은 일본에 더이상 머무를 수 없어 귀국했다. 귀국한 시기는 1944년 3월 19일 이전이었다. 김수영은 유학 생활을 통해 제국주의의 모순 및 억압과 그것으로 인한 설움을 체험했다. 아울러 그 극복을 위해 사랑을 인식했다.

목차

국문초록
Ⅰ. 서론
Ⅱ. 출생
Ⅲ. 성장기 및 청소년기
Ⅳ. 일본 유학
Ⅴ. 결론
참고문헌
Abstract

참고문헌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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