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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이민석 (한국교회사연구소)
저널정보
서강대학교 인문과학연구소 서강인문논총 西江人文論叢 第61輯
발행연도
2021.8
수록면
37 - 65 (29page)
DOI
10.37981/hjhrisu.2021.08.6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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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놀회 선교사 스위니(Joseph A. Sweeney, 徐耀燮, 1895~1966) 신부는 1895년 9월 4일 코네티컷 주(Connecticut) 뉴브리튼(New Britain)에서 태어났다. 그는 1915년 메리놀회에 입회하여 1920년 2월 8일 대신학교를 졸업, 사제 서품을 받았다. 그리고 이듬해 중국 선교사로 파견되었다. 3년 뒤 1924년에는 평양 지목구 교구 설정 준비를 위해 한국으로 전임되었다. 스위니 신부는 1926년 비현 본당 주임신부로 부임하여 성당기지를 확보하고 교회 기초 작업에 힘썼다. 이듬해 다시 만주 푸순(撫順)으로 선교지를 이동하여 푸순 지목구 교구 설정 준비에 매진하였다.
1932년 푸순 지목구가 설정된 이후 스위니 신부는 1932년 메리놀회가 담당하는 광둥성 장먼의 한센인 구호사업의 담당 신부로 임명되었다. 그는 신후이 한센인 요양소와 하이먼 한센인 요양소(천국의 문)를 설립하여 한센인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는 중일전쟁 기간에는 일본제국주의의 억압 그리고 1950년 이후에는 공산주의의 억압 속에서도 한센인 구호 활동을 계속하였다. 하지만 1953년 공산주의자들에 의해 억류되었다가 추방당하여 미국으로 돌아갔다. 미국으로 돌아간 스위니 신부는 본국에서도 한센병 연구와 한센병 구호사업에 열중하였다. 그는 1954년 한센병 치료에 공헌한 공로로 다미안 듀튼(Damien Dutton) 상을 받았다.
1955년 그는 평양교구장 서리이자 가톨릭구제회(N.C.W.C) 한국지부장 캐롤(George M. Carroll, 安, 1906~1981) 몬시뇰의 요청으로 한국에서 한센인 구호사업을 재개하였다. 그는 1956년 천주교구라회(Catholic Leprosy Service)를 창설하여 구호 활동을 전개하였다. 해방 후 한국전쟁을 거치며 총독부의 소록도 자혜의원을 통해 관리(강제격리) 되었던 한센인들이 ‘부랑나환자’가 되었다. 천주교구라회는 이들의 치료와 구호를 위해 힘썼다. 천주교구라회는 ‘나이동 진료반’을 조직하여 순회 진료를 하였다. 이를 통해 일제시기부터 해방 이후에도 계속된 한센인의 강제격리 치료가 재가(在家)로 전환하는 계기를 마련하였다.

목차

국문초록
1. 머리말
2. 중국 광둥성 한센인 구호 활동과 시련
3. 천주교구라회 창설과 ‘나이동 진료반’ 활동
4. 맺는말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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