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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109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33 - 70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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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崔北(1712~?)의 화가상이 어떻게 형성되었는지 살펴보고자 하였다. 최북의 당대부터 20세기 중반까지의 기록을 살펴본 결과 그의 기행에 대한 일화가 대부분 그의 사후에 생성되었다는 확인할 수 있었다. 최북에 대한 당대의 평가는 그와 가깝게 교유했던 여주 이씨와 근기지역의 남인 소북인 등에 의해 남겨졌다. 이들은 그를 진지한 대화상대로 여겼으며, 애정 어린 독려를 아끼지 않았다. 말년에 그를 만난 사람들은 그의 궁핍함을 안타깝게 여기기도 하였으나, 그것이 그의 기행이나 주색에 기인한다고 여기지는 않았다. 그의 그림에 대한 화평은 찬사에 가까웠으며, 주로 그림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었다. 또한 “정밀하다”거나 “고아하다”와 같은 평어를 통해서도 볼 수 있듯이 ‘기이함’과 ‘일탈’보다는 정재 되어 있는 미감에 주목한 것을 알 수 있다. 19세기 전반기에 지어진 남공철의 「최칠칠전」과 조희룡의 「최북전」은 이후 최북에 대해 가장 많이 인용되는 문헌이다. 이들은 최북의 생전 기록보다 더 생생하게 그의 기행을 묘사하고 있다. 그러나 이 두 기록은 상당부분 ‘전기’라는 문학 형식에 기반했음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남공철은 본인이 직접 경험한 최북이, 세간의 통설과는 반대로 지식과 예술을 겸비한 자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 최북의 기행을 의도적으로 배치하였으며, 조희룡은 여항인의 울분과 기개를 극대화하기 위해 상상력을 발휘했을 가능성이 크다. 19세기 후반기의 인물사전과 전기집은 이전 세대의 기록을 반복하며 다른 의미로 재생산하였다. 유재건의 󰡔이향견문록󰡕이 󰡔금릉집󰡕의 「최칠칠전」을 그대로 전재하였다면, 장지연의 󰡔일사유사󰡕는 신문 기고글로서 전거 없이 「최칠칠전」을 풀어서 이야기하였다. 다른 문헌이나 본인의 평어도 필요에 따라 자유롭게 삽입하기도 하였다. 그에 비해 오세창의 󰡔근역서화징󰡕은 철저히 개입을 자제하고 최대한 많은 자료를 전거와 함께 그대로 전재하였다. 이들 문헌은 이후 고전 문헌에 밝지 못한 이론가들도 조선의 서화에 접근하는데 큰 도움을 주었다. 20세기 중반기 화가이자 이론가였던 윤희순, 김용준은 이러한 자료를 바탕으로 하되 최북의 기행을 다른 시각에서 바라보았다. 이들에게 기행은 화가가 세상의 모순과 부딪히며 ‘미’를 추구해나가는 ‘처절한 몸부림’이었다. 그들에게 최북은 조선시대에 태어난 낭만주의 화가였다. 최북은 출신이 분명하지 않고, 그 자신이 남긴 기록도 없다. 이러한 모호함이 오히려 후대인들이 기록의 빈자리를 상상력으로 메우고, 자신의 화가상을 투영할 수 있는 조건이 되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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