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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제주대학교 탐라문화연구소 탐라문화 탐라문화 제63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 - 31 (27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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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문왕대 창설된 개지극당은 전투 목적이 아닌 정치적 필요에 의해 생성되었으며, 사료에서 확인되는 戟의 존재와 기능 변화는 극이 의장⋅의례 병기로 전환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이러한 극을 사용하는 개지극당은 儀仗 기능을 수행하는 군단의 등장이다. 개지극당은 ‘신라화 된 戟’이라 할 수 있는 개지극을 사용한 의장 담당 군사조직이었고, 안압지(월지)에서 출토된 철제 무기는 그것을 뒷받침하는 유물로 여겨진다. 개지극당 창설 전에는 시위부가 그 기능을 수행했으며, 국가의 위엄과 의례를 상징하는 장소들이 시공간적 무대였다. 신문왕대 체제 정비가 마무리되면서 전문적 의장 군단의 필요성이 커지자 시위부의 기능에서 기능을 분리하여 개지극당을 창설하였다. 신라 중고기부터 존재했던 독자적인 천하의식은 더욱 강화되어 신라 중심 세계관의 확장으로 이어졌는데, 삼국통일 이후 형성된 천하관은 이전과는 차원을 달리했다. 당의 묘호 개정 요구를 거부한 것과 보덕국의 설치와 9주 체제의 정비 등은 신라가 황제국 위상을 추구했던 모습이었고, 새로운 도성의 축조 시도 역시 새로운 통일국가의 위상에 걸맞는 외형을 갖추고자 했던 신라 중대왕실의 의지의 표현이었다. 즉 개지극당은 단순한 전투 군단이 아니라 삼국통일전쟁이 마무리 된 이후 신문왕대의 시대적 상황이 강하게 투영된 의장조직이었으며, 신라 중대왕실의 황제적 위상 추구에 따라 생성된 역사적 산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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