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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정보
저널정보
국제한국문학문화학회 사이間SAI 사이間SAI 제28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51 - 95 (45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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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국제적으로 합의된 ‘지속가능한 개발’이 지닌 냉전적 성격을 그 중요한 요소인 인도주의 구호 단체들 중 하나인 케아(C.A.R.E)의 한국사업을 통해 살펴보고자 한다. 주한 케아는 유럽의 전후 구호를 돕던 미국계 민간자선단체로서, 제2차 세계대전 후 한국사업에 참여하였다. 케아는 인도주의 구호를 표방하였으나, 몇 가지 점에서 전후 미국의 냉전정책을 수행한 혐의가 있다. 미군정기 사업진출, 주한 케아의 우유급식사업, 그리고 푸드 크루세이드 사업이 대표적이다. 먼저 초기 주한 케아의 한국 사업진출은 미국 국무부 및 군부의 판단과 권유에 의한 것이었다. 실제로 트루먼 행정부는 한국전쟁 중 케아를 미국 내 한국전쟁 지원을 위한 매개로 활용하고자 하였다. 하지만 아이젠하워 정권 등장 이후, 새롭게 선택된 한미재단과의 갈등 속에서 주한 케아의 독점적 지위는 훼손되었다. 한편 1950년대 주한 케아의 우유급식사업은 대표적인 인도주의 구호사업으로 간주된다. 그러나 이 사업은 한국 내에서 유니세프와 주한 케아가 미국 잉여농산물의 분배를 놓고 갈등한 대표적 사건이었다. 이 사건을 통해 주한 케아는 유니세프의 우유급식사업을 케아의 이름으로 전유할 수 있었고, 동시에 한국정부 및 원조당국의 운송시설을 자유롭게 이용할 수 있게 되었다. 1950년대 중반 주한 케아의 푸드 크루세이드 사업은 주한 케아가 미국의 냉전 이익에 복무한 증거이다. 소위 1달러 푸드 크루세이드라고 호명되었던 이 사업은 주로 38도선 인근의 마을들에 지원되었고, 냉전의 전초기지를 유지하는데 집중되었다. 동시에 ‘자조’패키지가 지원되었던 ‘자유의 마을’ 프로젝트들 역시 한국전쟁 당시 이탈한 북한주민들의 남한 재정착을 지원하는 프로젝트들이었다. 결과적으로 주한 케아는 오늘날 대표적인 인도주의 구호단체이지만, 실제로는 냉전 하 자신의 영리적 목적과 미국의 냉전적 이익을 인도주의 구호라는 이름 하에 절묘하게 잘 동거시킨 민간자선단체였다. 1950년대 주한 케아의 활동은 현대 인도주의 구호활동이 결코 중립적이지 않을 수 있다는 사고를 제공하는 한 사례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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