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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공연문화학회 공연문화연구 공연문화연구 제40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269 - 306 (3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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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적으로 영산은 판소리 단가(허두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알려져 있으나 『송남잡지(松南雜識)』의 기록은 다르다. 조재삼은 『송남잡지』에 ‘영산’에 관련된 내용 따로 두어 설명하고 있다. <신광수의 시>, <백호 임제의 시>, <김명원의 시> 세 종류 시(詩)를 예시가 그것이다. 첫째, <신광수의 시>에 등장하는 ‘우조 영산’은 춘면곡에 앞서 부른 노래이다. 신광수가 <제원창선>(1750)을 쓴 시기는 유진한의 『만화집(晩華集)』(1754)이 발표된 시기로 판소리가 널리 알려지지 않은 상황에서 ‘우조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볼 수는 없다. 둘째, <백호 임제의 시>와 연결된 ‘영산 도두음’은 피리와 도드리장단이 사용되었다. 이러한 흔적으로 보아 기악곡인 영산회상과 연결된다. 영산은 불교적인 것에서 비롯되었으며, 불교용어를 가진 영산회상은 민간 뿐 아니라 궁중에서도 계속 사용되었다. 셋째, <김명원의 시> ‘월하정인’을 영산 항목에 등장 시키며 ‘타령’이라 칭하였다. 당시 타령의 용어 쓰임새가 판소리와 정가 모두를 가리키고 있었다. 이후 신재효의 <광대가>등 19세기 자료 대부분 ‘영산’의 용어는 판소리 단가와 같이 본격적인 판소리를 하기 앞서 목을 풀기 위한 용도로 기록되었다. 『송남잡지』에서 기록된 초창기의 영산은 불교적인 성격을 지닌 용어로 영산회상, 가사와 같은 도드리장단이 중심이 되는 독립된 음악 양식이었으며, 『송남잡지』가 쓰여진 1855년 당시 영산은 타령이라는 용어로 변모하면서 창부음악과 가객음악 모두를 포함하여 지칭하는 말로 영산과 타령 두 용어가 혼재하였다. 그리고 판소리가 성행하면서 ‘타령’이라는 용어는 판소리를, ‘영산’은 판소리 단가를 가리키는 용어로 불리게 된 것이다. 따라서 모든 기록의 영산을 판소리 단가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 이와 같은 상황은 종교 및 사회적 변화와 밀접한 관련을 가지고 있다. 숭유억불정책은 불교적인 영산이라는 용어를 배척하였고 불교가 탄압받던 조선 중기에는 영산과 타령이 혼재하거나 영산 대신 타령이 사용되다가, 조선 후기 불교가 재성장되면서 판소리의 등장과 함께 또 다른 의미인 단가의 뜻으로 영산이라는 용어가 새롭게 재정착된 것으로 보여진다. 19세기 이르러 판소리가 등장하며 영산이 단가로 사용한 이유는 바로 이러한 사회적. 종교적인 변화양상에 따른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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