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사상문화학회 한국사상과 문화 한국사상과 문화 제100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807 - 84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일연의 「가락국기」에 기록되기 전 원형의 모습을 추론할 수 없게 다양한 문화와 만나 변형을 거듭한 끝에 일연에 의해 지금 우리가 만나고 있는 글로 정착된 것이다. 변화를 거듭한 이면에는 전제한 것과 같이 문화적인 요인과 함께 근본적인 덧씌우기는 김유신, 문무왕으로 대표되는 가야계 인물들의 조상숭배 사상이 일정 영역으로 삽입된 것으로 추정된다. 쌍어문, 허왕후 비문에서 발견되는 문양, 글귀가 그들이 살았던 시대와 영속성 유무를 재검토할 필요성이 있다. 조선시대 한양 도성 축, 왕릉 안순왕흥 창릉, 소혜왕후 경릉, 현덕왕후 현릉, 장경왕후 희릉 무석인의 칼날 끝 부분이 안쪽으로 파여 있는 모양은 통도사 천왕문의 지국천왕이 들고 있는 칼의 형태와 같다. 이와 같은 현상은 국왕의 장례는 5개월 안에 치러야 했기 때문에 선공감에 소속된 석수장인으로 인역이 부족해 많은 수의 승려장인들이 동원되었다. 이때 동원된 승려장인들은 왕실과 관련된 제반불사를 담당하는 이들이었을 것이다.(문병대,「조선 전반기 조각사론」,『한국의 불상조각4-삼매와 평담미』, 예경, 2003, p.307(재인용) 에 승려들이 동원되었듯이 지방의 문화재 보수에도 승려들이 참여하게 된다. 그들의 손에 의해 재현된 김수로왕의 쌍어문은 승려들이 사찰에 사용하는 문양을 그대로 모사한 것으로 쌍어문만으로 인도 연계설은 소설적 상상력을 역사기록으로 전하는 것이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0)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