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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중국사학회 중국사연구 중국사연구 제125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61 - 189 (2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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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중국 역사상에 명청 교체를 알리는 대사건인 사르후전투를 조명한 「薩爾滸之戰書事」의 건립 과정과 비문 내용을 조선군 참전기록을 중심으로 분석한 것이다. 1619년(천명 4)에 명나라는 양호를 앞세워 대군을 사로로 나누어 후금을 공략했다. 국가의 존망이 달려있는 후금 누르하치는 사르후와 그 일대에서 군사력을 집중 공략하는 뛰어난 전술로 명군을 궤멸시켰다. 조선은 원치 않는 전쟁에 姜弘立을 내세워 명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지만, 좌우영이 궤멸되고 중군이 투항하는 뼈아픈 참패를 당했다. 1775년(건륭 40) 11월에 청 건륭제가 선대 누르하치가 사르후전투에서 세운 위업을 영원히 기리기 위해 「사르후지전서사」를 작성했다. 1776년(건륭 41) 2월에 사르후전투의 현장인 竪碑村 북쪽에 비석을 세우고 비정을 지었다. 1778년(건륭 43), 1783년(건륭 48)에 각각 「사르후지전서사」가 지니고 있는 의미를 다시 한 번 되새기는 시편을 남겼다. 1978년에 「사르후지전서사」 비석은 사르후 현장에서 심양고궁으로 옮겨졌다. 「사르후지전서사」는 󰡔청태조실록󰡕을 토대로 삼아 문구를 약간 다듬어놓은 것이다. 비문의 기술내용에 있어 후금이 대패시킨 명군의 숫자를 부풀리거나 신풍이 불어와 대승을 거두었다는 식으로 자신들의 업적을 드높이기 위해 과장법을 도입했다. 비문에 적힌 조선군의 참전기록을 보면 국내 문헌에 찾아볼 수 없거나 상반되는 내용을 확인할 수 있다. 부차전투에서 명 姜應乾의 보병이 조선군과 합세했다. 화의를 교섭할 때 조선 문헌과 달리 강홍립이 먼저 차사를 보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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