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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3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39 - 6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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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산사는 개산 1,400년을 지난 고찰이자 명찰이다. 이처럼 유구한 역사를 거치면서 금산사는 한국불교사 전반에 걸쳐 많은 역할을 해왔으며, 금산사와 깊은 관계를 맺고 있는 고승도 다수 배출하였다. 특히 진표는 762년부터 766년에 이르는 기간 동안 대규모의 중창불사를 진행함으로써 훗날 금산사 대중에게 실질적 창건주로 추앙받던 고승이었다. 진표는 신라 교학불교의 발전이 정점에 달해 있던 시기를 살다간 고승이다. 하지만 정작 그는 단 한 편의 저술도 남기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표 관련 연구는 이미 상당한 양에 이르고 있으며, 특히 그가 펼친 점찰교법은 점찰법회 연구의 한 축을 이루며 최근까지도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이 논문은 진표의 금산사 점찰법회 설행과 그 계승 문제를 살펴보기 위한 목적을 지니고 작성되었다. 이를 위해 먼저 Ⅱ장에서는 금산사의 창건과 義寂, 順濟 등에 관계된 내용을 정리해 보고자 하였다. 금산사는 진표가 주석하기 이전인 7세기 무렵부터 이미 ‘유식도량’으로서의 사격을 형성하고 있었다는 점을 살펴보기 위한 목적이다. Ⅲ장에서는 진표의 교화행과 점찰법회에 관계된 내용을 살펴보았다. ‘진표불교’의 핵심은 대중교화에 있는데, 그가 행한 점찰교법은 대중교화를 위한 하나의 방편이었다. 진표는 금산사에서 점찰법회를 처음 개설하였으며, 이후 전국 각지를 돌며 이 교법을 펼쳐 나갔다. 마지막 Ⅳ장에서는 진표 점찰법회의 계승 문제를 살펴보고자 하였다. 진표의 점찰법회는 고려시대 이후에도 꾸준하게 계승되는 모습을 살펴볼 수 있지만, 정작 금산사에서는 활발하게 전승되지 못하였다. 필자는 이러한 현상의 원인을 금산사의 사격 변화에서 찾고자 하였으며 본문에서 이와 관계된 내용을 상세하게 언급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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