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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중동학회 한국중동학회논총 한국중동학회논총 제40권 제2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1 - 40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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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년 이후 누르당의 입장이 종교적 살라피에서 정치적 실용주의로 급변하기 시작한 시점은 국회의원 선거였다. 누르당은 선거 투표자의 총 25%를 획득하였으며, MB의 FJP 다음으로 많은 의석수를 확보하였다. 이는 누르당이 원내 2당으로 발돋움하는 계기가 되었다. 하지만 누르당의 정치적 입지가 강화되었다는 것은 정치정당인 누르당과 살라피 다와의 관계가 악화되었다는 것을 의미하였다. 2012년 대통령 선거는 누르당과 다와의 관계를 더욱 갈등 속으로 몰아넣었다. 누르당을 장악했던 정치적 성향의 압드 알가푸르는 무르시를 지지했지만, 살라피 다와의 지도자 부르하미는 무르시의 당선을 저지하였다. 왜냐하면 다와와 MB 간 오랜 종교적 갈등과 경쟁 관계를 고려해 볼 때, MB가 국가권력을 장악한다는 것은 다와를 약화시키고 다와에 해를 가할 수도 있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다와는 MB의 정치적 패권 장악이 궁극적으로 종교적 패권 장악으로 나타날 것이라고 생각했으며, 이는 MB와 이념적 경쟁관계에 있는 다와의 미래에 별로 도움이 되지 않는다고 판단했다. 누르당은 MB의 새로운 정치 체제를 인정하려 노력하였으며, 무르시에 대한 정치적 비난을 삼갔다. 누르당과 MB 사이의 갈등과 분열을 정략적 통합으로 이끈 주요 주제는 헌법 문제였다. 하지만 무르시 정권에서 기대했던 만큼의 정치적 결과물을 얻지 못한 누르당은 반 무르시 운동에 가담하였으며, 결국 자유주의자들과 손을 잡고 야권의 반 무르시 운동에 가담하였다. 이는 누르당이 이슬람주의 MB에 대한 지지를 철회하고 세속주의 군부 세력과 손을 잡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2013년 군부쿠데타 이후 목격되었던 누르당의 이중적 행동과 처신은 이집트 정치사에서 전례가 없었던 사례였다. 왜냐하면 누르당은 세속주의 군부정권의 환심을 사기 위해 정치적으로 실용주의 입장을 취했던 반면, 이슬람주의자들의 비난을 피하기 위해 종교적으로 강력한 살라피주의와 배타적 순니파 종파주의 입장을 취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르당 지도부의 이런 이중적 태도는 당내 분란으로 이어졌다. 당시 누르당은 실용주의와 이슬람주의라는 두 가지 노선으로 양분되어 있었으며, 내부에서 진행되었던 양측 간 논쟁은 당내 권력 이동 및 이념적 변화 문제와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었다. 누르당 설립자들은 처음 정당을 설립하면서부터 등장했던 정치적 입장과 종교적 입장의 대립과 갈등을 순수한 종교적 입장에서 해결하려 노력하였다. 이들은 본질적으로 정치는 종교와는 다른 영역에 속한다는 점과 정치와 종교는 서로 다른 원리와 원칙을 가지고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이는 당 내부에 정치적 실용주의와 종교적 종파주의가 공존하고 있지만, 각 진영의 정체성과 체계는 별개라는 점을 의미하였다. 하지만 2012년 말 다와 집단의 살라피 종교 지도자들이 당을 장악하면서 상황은 변화되기 시작했다. 이들은 다와 집단의 이득 확대를 위해 동일한 종교주의 입장을 취했던 MB와의 단합 또는 경쟁을 피하고 정치적 실용주의 노선을 채택하기 시작했다. 당시 누르당이 취했던 정치적 행보를 분석해보면, 당은 이슬람주의 정당이 아니라 생존을 위한 종교 로비 단체 정도로 존재하면서 이슬람 종교의 강화 문제보다 근본적인 아래로부터의 사회적 변화와 정치 참여를 추구했음을 알 수 있다. 2013년 이후 누르당의 실용주의 입장은 정치에 대한 당의 조직적 관리에서 비롯되었다. 이런 실용주의 입장은 2013년 7월 3일 군부가 권력을 장악했을 때 누르당이 왜 군부를 지지했나에 대한 두 가지 설명을 가능케 하였다. 하나는 사우디아라비아가 누르당의 중요한 후원 세력이며, 누르당은 사우디의 명령에 따라 행동한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다와는 결코 사우디와 특별하게 가까운 관계가 아니었으며, 사우디의 이집트에 대한 전략은 무바라크의 추종자들과 군대를 지지하는 것이었지 살라피주의자들을 지지하는 것은 아니었다. 다른 하나는 살라피 다와는 무바라크 체제 하에서 보안당국과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으며, 이는 누르당의 입장을 충분히 설명해 준다는 주장이었다. 하지만 무바라크 정권의 보안당국이 다와와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는 내용이 사실이라 하더라도 그 강도는 생각하는 것만큼 강한 것은 아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르당의 입장이 단순하게 기회주의적 입장이었다거나 외부적 요인에 의해 변화한 것이라고 말할 수는 없다. 왜냐하면 누르당의 정치적 실용주의 입장과 상관없이 그 배후에는 분명한 이념적 논리가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누르당은 어떤 정치적 희생을 치르더라도 종교적 활동이나 선교 운동에서 살라피 다와의 입장을 대변해왔던 것이 사실이다. 군부쿠데타와 시시 정권의 등장 이후 누르당이 다양한 형태로 자신들의 정치적 실용주의 입장을 정당화하자 일반 대중 살라피주의자들은 종교적 원리원칙에서 벗어난 정치적 개입을 비난하였다. 하지만 원래 살라피를 주창했던 다와는 이런 정치적 입장들을 대부분 수용하는 편이었다. 아랍스프링 이후부터 지금까지 누르당이 취했던 기본적 입장이나 향후 군부정권 하에서 취할 가능성이 있는 입장은 정치적 실용주의로 요약될 수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누르당이 자신들의 종교적 이념이나 교리인 살라피를 포기하거나 변경할 가능성은 거의 없다. 왜냐하면 누르당의 정치적 실용주의 입장들은 능동적인 조치가 아니라 대부분 수동적인 조치들이었으며, 적극적인 선제적 조치들이 아니라 방어적 조치들이었기 때문이다. 결론적으로 누르당이 취하고 있는 정치적 실용주의 입장과 교리적 엄격주의, 그리고 순니파 종파주의 입장은 분명히 상반되고 모순적이기는 하지만 현재 이집트 정치 상황을 고려할 때 누르당의 생존을 위해 향후에도 지속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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