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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한국불교미술사학회 강좌 미술사 강좌 미술사 제54호
발행연도
2020.1
수록면
117 - 149 (33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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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북제(北齊: 550~577) 북향당산석굴 중 가장 이른 시기인 552년경 조영된 북대굴을 대상으로 관련 기록과 특징, 석굴의 원형과 조성 목적 등을 살펴 북제와 신라 불교조각과의 관계, 경주 골굴석굴 조성에 미친 영향을 고찰해 보았다. 북향당산석굴 북대굴은 북제 문선제가 조영한 굴로, 중심탑주 3면에 1불 2보살상으로 구성된 삼세불(석가, 정광불, 미륵불)이 봉안되어 있다. 중심탑주 상단의 빈 감실은 기록으로 전하는 문선제(550~559 재위) 관을 안치한 장소일 것으로 추정되며, 하남성 안양 출토로 전하는 석관상(石棺床)은 문선제 장례구로 짐작되고 있어, 당시 소그드 문화에 탐닉했던 북제 황실의 단면을 엿볼 수 있다. 남아 있는 북향당산석굴 불보살상은 이전 북위~동서위 시기 수골청상형(秀骨淸像形) 불상의 모습이 아니라, 양감이 풍부하고 얼굴의 부피감이 잘 표현된 깔끔하고 중후한 모델링이 구현되어 있다. 이러한 급격한 변화는 문선제가 북위의 한화(漢化) 정책에 반하여 선비화(鮮卑化) 정책을 추구하면서 소그드 문화를 선호하였던 것과 연결시켜볼 수 있을 듯하다. 당시 신라는 진흥왕(540-576 재위) 때 한강유역을 차지하여 해로를 통한 중국과의 통로가 열렸다. 북제와 고구려의 관계 악화로 이전에는 고구려에 수여되던 “동이교위(東夷校尉)” 책봉을 565년에 신라가 수여 받기도 하였다. 진흥왕대 신라는 북제와 직접 교역하면서 업성(鄴城)의 발전된 문물, 특히 북향당산석굴의 뛰어난 조형미가 신라에 직접 전해져 국보 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과 같은 기념비적인 찬란한 불교미술을 꽃피웠을 것으로 짐작된다. 출토지는 확실하지 않으나 6세기 후반~7세기 초에 만들어진 국보78호와 83호 반가사유상은 런던의 Victoria and Albert Museum에 소장된 북향당산석굴의 중심석주 북면 불상의 얼굴과 비교되며, 양감 있고 당당한 모델링에서 북향당산석굴 존상과 유사한 점이 보인다. 또한 일월식(日月飾) 보관(寶冠)이나 둥근 의자 등 세부 표현에서는 북제에서 활동하던 소그드인들의 미술이 반영되었다. 북향당산석굴은 불교조각에서뿐 아니라 골굴석굴 개척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지리적으로 외래 문물의 유입이 빠르게 입수되고 왕실의 행차가 잦았던 교통로상에 위치해 있던 두 절의 위치와 북제의 승조(僧稠, 480~560) 스님과 신라의 원효(元曉, 617~686) 스님에 대해 검토하여 보았으며, 신라 초기 수행굴로서의 골굴석굴 성격도 살펴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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