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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미즈노 나오키 (일본 교토대학) 정종화 (한국영상자료원) 이유미 (한국영상자료원)
저널정보
한국영화학회 영화연구 영화연구 제83호
발행연도
2020.3
수록면
5 - 41 (37page)
DOI
10.17947/FS.2020.3.8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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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의 조선키네마주식회사가 1925년 제작한 <암광=신의 장>은 식민지기 조선영화사에 큰 의미가 있는 영화이다. 조선키네마는 일본인이 설립하여 경영하던 회사로, 이 영화의 각본 · 감독은 일본인 다카사 간초(高佐貫長: 조선명 왕필렬)가 담당했으나 배우는 전원 조선인이었고 연출에는 윤백남도 관여했다. 이러한 의미에서 <암광=신의 장>은 ‘일조(日朝)합작영화’ 라고 할 수 있다.
<암광=신의 장>은 조선 사회에서 차별받던 백정(도부: 屠夫)을 주인공으로 한 영화이자, 백정 차별이라는 사회 문제를 다룬 ‘현대극’이기도 했다. 1923년 백정출신들의 인권 확립과 해방을 촉구하며 조선형평사(朝鮮衡平社)가 창립되었으나, 형평운동(衡平運動)에 대한 일반 사회의 반발이 적지 않았고 형평사원과 일반 민중들 사이의 충돌 사건도 잦았다. <암광=신의 장>은 이러한 시대를 배경으로 제작된, 현대 사회의 모순을 문제 삼은 영화였다.
영화 <암광=신의 장>은 경찰의 검열을 받아 타이틀을 <암광>에서 <신의 장(粧)>으로 수정해야만 했다. <신의 장>이라는 타이틀은, 도부들 사이에서 가축을 잡는 데 사용하는 칼을 가리키던 용어 ‘신(神)의 장(杖, 지팡이)’에서 유래했다고 생각할 수 있다. 영화는 개제(改題)되어 경성에서 일단 개봉되었으나 ‘계급 투쟁’을 유발할 우려가 있다고 간주되어 상영이 금지된다. 그러나 이후 경상남도와 북도에서는 (연극)극장에서 상영되었고 순회 상영도 이루어진 것으로 보인다. 이는, 1926년 7월 ‘활동사진필름검열규칙’이 제정되고 조선 전체를 아우르는 영화검열 체제가 정비되기 이전의 영화검열 상황을 드러내는 사례이기도 하다.
<암광=신의 장>은 현대적인 문제를 다뤘음에도 불구하고, ‘치정-활극’으로 흘러 조선인의 감정에도 부합하지 못한 작품이 되어 버렸다는 식의 혹평밖에는 받지 못했다. 그러나 윤백남, 나운규, 주인규 등 조선영화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영화인들이 관여한 현대극이라는 점에서 그 영화사적 의미를 찾을 수 있다.

목차

국문요약
1. 들어가며
2. 조선키네마주식회사와 그 관계자
3. 〈암광〉과 형평운동
4. 검열과 타이틀 변경 문제
5. 〈신의 장〉에 대한 평가
6. 나오며
참고문헌
Abstra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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