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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불교연구원 불교연구 불교연구 제51호
발행연도
2019.1
수록면
203 - 233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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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유사󰡕 「진성여대왕 거타지」조는 진성여왕대의 혼란상을 보여주는 왕거인, 거타지 설화로 구성되어 있다. 두 사례에 설화적 요소가 다분한 만큼 이에 대한 초기의 연구는 주로 국문학적으로 접근하였지만, 진성여왕대의 사회상에 대한 보완자료로서 역사학적으로 연구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기존의 연구들은 왕거인과 거타지를 각각 왕경의 상층민, 지방의 하층민으로 규정하여 본 조목이 진성여왕대 왕실에 대한 대내외적 반발을 상징한다고 보거나, 특히 거타지의 경우 지방의 토착신앙 혹은 변질된 불교에 대비된 정통 불교 세력을 상징한다고 파악하였는데, 이러한 시각들에는 왕거인이 大耶州의 隱者로 표현된 󰡔삼국사기󰡕의 기록과 거타지가 良貝의 무리로서 왕권을 대변하는 존재라는 점에 주목하지 않은 한계가 있다. 즉 왕거인 설화는 해인사를 중심으로 한 진성여왕대 왕실의 불교성향(혹은 불교정책)에 대한 大耶州 사람들의 반발을, 거타지 설화는 앞선 반발들에 대한 무마와 僧政의 문란 등에 대한 俗權의 개입을 정당화하고자 부정한 승려가 왕의 군사로 설정된 속권에 의해 처단된다는 내용으로 형성된 것이다. 진성여왕대의 왕실과 불교계에 대한 반발을 의도하고 있다는 점에서 두 설화의 채록시기는 진성여왕대 이후로 생각되는데, 왕거인의 경우는 대야주의 후백제 함락 이후, 거타지의 경우는 왕건의 불교계 재편 시기와 관련하여 이해할 수 있다. 이와 함께 󰡔삼국유사󰡕에 두 설화가 채록된 것은 신라 불교의 고려로의 연속성과 함께 고려초 불교계 재편의 의의를 부각시키기 위함으로 파악된다. 이렇듯 본 조목은 나말여초 시기 국가와 불교계의 관계를 보여준다는 시각에서의 접근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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