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 내서재 .. 알림
소속 기관/학교 인증
인증하면 논문, 학술자료 등을  무료로 열람할 수 있어요.
한국대학교, 누리자동차, 시립도서관 등 나의 기관을 확인해보세요
(국내 대학 90% 이상 구독 중)
로그인 회원가입 고객센터 ENG
주제분류

추천
검색

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19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357 - 392 (36page)

이용수

표지
📌
연구주제
📖
연구배경
🔬
연구방법
🏆
연구결과
AI에게 요청하기
추천
검색

초록· 키워드

오류제보하기
본 논문은 章士釗의 求學背景 및 󰡔蘇報󰡕와 󰡔國民日日報󰡕 시기 언론활동과 정치사상을 검토한 것이다. 1881년 湖南省 善化縣에서 출생한 章士釗는 어려서부터 전통적 교육을 받았지만 청말 신식학당 교육을 통해 새로운 학문과 사상을 받아들였다. 兩湖書院에서 구학하는 동안 그는 自立軍 봉기를 주도한 唐才常, 秦力山, 沈藎 등과 교류하면서 維新思想을 접하였다. 특히 이 시기 그는 다양한 인맥관계를 갖게 되는데, 당시 알게 된 황흥과의 인연은 신해혁명기까지 이어져, 그의 활동방향에 중요한 영향을 주었다. 章士釗는 南京의 江南陸師學堂에 진학하여 구학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그런데 이 학교 재학기간 ‘退學潮’와 ‘拒俄運動’이라는 급진적 행동에 참여하게 되었다. 따라서 反淸革命思想이 지식인 사회에 널리 전파되기 시작했을 때, 그는 막 20대의 열혈청년으로서 ‘廢學救國’의 길을 선택하였다. 章士釗는 󰡔蘇報󰡕의 주필이 되자 󰡔蘇報󰡕의 개혁을 선포했는데, ‘輿論商榷’란을 설치하여 언론이 여론의 생산과 전파 기관으로서 역할을 다해야 한다고 인식하였다. 또한 鄒容의 󰡔革命軍󰡕을 적극 찬양하면서 급진적인 혁명사상의 선전가가 되었다. 󰡔蘇報󰡕 사건으로 동지들이 투옥되자, 그는 󰡔國民日日報󰡕를 창간하여 혁명사상의 선전을 이어가고자 하였다. 󰡔國民日日報󰡕에서는 당시 혁명파의 중요한 논리로서 ‘黃帝紀年’을 적극적으로 사용하였다. 또한 沈藎사건에서 드러난 淸朝의 부패와 잔혹성을 폭로하기도 하였다. 이 시기 그는 東大陸圖書譯印局을 설립하여 다수의 혁명선전용 출판물을 발행하였고, 華興會의 봉기계획에도 참여했다. 그러나 계획이 탄로나 투옥되자, 강남육사학당을 퇴한 한 후 줄곧 주장하던 ‘廢學救國’을 ‘苦學救國’으로 전환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목차

등록된 정보가 없습니다.

참고문헌 (31)

참고문헌 신청

함께 읽어보면 좋을 논문

논문 유사도에 따라 DBpia 가 추천하는 논문입니다. 함께 보면 좋을 연관 논문을 확인해보세요!

이 논문의 저자 정보

최근 본 자료

전체보기

댓글(0)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