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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대구사학회 대구사학 대구사학 제131권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399 - 437 (3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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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10년 프로이센의 작은 마을에서 독일기사단은 폴란드-리투아니아 연합군을 맞아 숙명의 전투를 벌였다. 전투는 중동부유럽의 역사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쳤다. 영원한 십자군으로서 슬라브족의 개종과 정복에 활약한 독일기사단은 이제 쇠퇴의 길로 접어든 반면, 폴란드 왕국과 리투아니아 공국은 연합세력을 형성하고 이후 수 세기 동안 이 지역에서 막강한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다. 이 전투는 근대 민족국가의 형성 과정에서 영원한 기억의 전쟁으로 부활한다. 독일기사단은 위대한 십자군 혹은 영웅적인 개척자로 재해석되었고, 1410년 전투는 민족사의 일부로 편입되었다. 민족주의 세례를 받은 작가와 역사가들은 이 전투를 통해 민족의 영광을 재현하거나 혹은 아픔을 되새겼다. 역사적 기억의 소환은 정치상황의 변동에 따라 결정되었다. 그룬발트는 때로는 침략 전쟁의 역사적 이데올로기로서 소환되었고, 때로는 고통스런 현실에 희망을 주는 먼 옛날 황금기의 영광스런 과거로 소환되었다. 각국의 ‘제2의 그룬발트’ 창조는 기억 투쟁의 극적인 산물이었다. 독일인의 자극은 폴란드인의 반응을 초래했고, 정치적 공방은 기념식과 기억의 터로서 영원히 민족의 기억 속에 남았다. 폴란드인이 그룬발트를 적극적인 기억 투쟁을 통하여 민족의식 고취의 수단으로 삼는 반면, 리투아니아인은 폴란드인의 선례를 좇아 대항 기억을 만들어가는 소극적인 기억 투쟁으로 일관했다. 소비에트 사회주의 시절에는 그룬발트가 민족의 차원을 넘어 소비에트 시민연대의 정신을 구현하는 역사적 상징으로 부각되기도 했다. 1990년대 이래 그룬발트는 민족의 기억에서 차츰 역사가의 사명으로 전환되고 있다. 그것은 정치적 소용돌이가 가라앉고 민족주의 담론이 서서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는 증거이기도 하지만, 아직 확신하기에는 섣부른 측면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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