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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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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65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89 - 11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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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논문은 세종실록에 수록된 祈雨 관련 기사를 중심으로 神과의 소통에 대한 특징과 구체적인 양상을 고찰함을 목적으로 하였다. 연구의 타당성 확보를 위하여 다양한 장르의 복합적 특징을 갖는 實錄을 대상으로, 또 기우에 대한 가장 많은 기사가 수록된 세종대로 시기를 한정하였다. 세종실록에서 기우제의 절차와 방법에 대해 세밀하고 치밀히 묘사한 것은 조선 초기에 다양한 국가 예제의 정비가 이루어지는 과정에서 제례의 규범화를 제시하려는 결과로 생각된다. 抑佛을 국정의 기조로 제정하였지만, 가뭄 같은 비정상적인 특수한 상황에서 왕을 비롯한 종친들은 오래도록 민간에 전승되어 온 불교의 민생 안정 기능과 승려가 주도하는 제의의 가치를 용인하였다. 유교적 이념을 고수하는 대부분의 신료들은 국왕을 비롯한 종친들이 기우제에서 불교를 숭상하거나 승려를 우대하는 것에 대해 견제와 비판의 입장을 보였다. 그들은 정치권력의 정점에 있는 세종의 好佛이 자칫 그들의 왕에 대한 통제와 견제를 약화시킬 것과 유교가 국가의 주된 이념으로서의 지위를 상실할 것을 우려하였다. 그리하여 승려가 기우제에 단순 집사자 이상으로 세종의 예우를 받거나 제의가 끝난 후에 불교 사찰에 대한 보상이 선행될 때에는 경전과 선왕의 전례 등에 근거하여 반대와 비판을 일삼았다. 앞의 몇 가지 특징을 바탕으로 기우제에 대한 세종실록의 기록들을 고찰한 결과, 가뭄이라는 천재지변에 대해 세종이 단순한 정치적인 시행책의 제시에서 자기 자신에 대한 반성 즉 自省으로의 내적 방향성을 지닌 진실한 태도를 보이면서 신과의 소통을 시도하는 양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또 가뭄 같은 재해 타개를 위한 중요한 제의의 주재자라는 신분으로 왕과 神 사이의 소통을 대행하던 신하들이 가뭄의 해소나 민생의 안정을 위한 정책의 제시를 요구하는 왕의 요청을 외면한 채 자신들의 편의와 이익을 도모하는 이기적인 조치나 형식적인 면책성 진언을 전개하며 왕과 신의 소통을 방해 또는 거부하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조선 건국 이전의 기우제에서 주도적 역할을 하던 승려는 건국 이후의 체제가 정비되어 가던 세종 무렵에는, 신과의 소통을 위한 제의의 주재자에서 단순 참여자나 매체적 수단으로 전락하였다는 사실을 확인하였다. 이것은 국가를 주도하는 이념이 불교에서 유교로 변화하였다는 사상 변화의 의미를 넘어 이념의 변화가 국가 운영을 주도하는 계층의 속성의 변화를 수반한다는 정치·사회적인 의미와 연계되면서 다양한 양상들이 사실적 기사문인 실록에 나타난 것으로 이해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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