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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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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방한문학회 동방한문학 동방한문학 제42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125 - 164 (4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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明은 사신을 보낼 때 환관을 파견하는 관례가 있었으나, 조선에 대해서는 조정의 문관을 선별하여 사신으로 파견하기도 했다. 이들 문관 사신들은 조선 경내에 이르러 사행로를 따라 여행하면서 곳곳에서 많은 기념시를 지었고, 이 시를 다시 조선 접반사에게 보여주어 차운하게 하였다. 조선조에서는 문관 사신이 오는 것을 기념하기 위해 사신과 주고받은 시문들을 모아 문집으로 간행하고 이를 『皇華集』이라 했다. 『황화집』은 조선 세종 32년(1450)부터 인조 11년(1623)까지 180여 연 간 24차에 걸쳐 편찬되었으며, 분량은 25책 50권에 달한다. 『황화집』은 양국의 문인들이 자존심을 걸고 겨룬 시문이 실려 있다. 우리는 『황화집』의 연구를 통해 양국 문화 교류의 일단을 파악할 수 있고, 사신들이 조선의 자연과 풍속, 그리고 역사와 문화에 대해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는지도 알 수 있을 것이다. 먼저 『황화집』을 편찬한 이유에 대해 살펴보았다. 그 결과 『황화집』은 단순히 문관 사신이 온 것을 기념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조선의 문화와 국위를 적극 선양하기 위해 편찬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리고 이어서 기순과 서거정을 통해 明使와 조선 접반사의 한시 수창의 실례를 살펴보았다. 그리고 이어서 사신들이 조선을 어떻게 이해했는지 그 단면을 살펴보았다. 사신들은 김사월의 효에 깊은 감명을 받았는데, 이것은 조선인도 중국인과 마찬가지고 효라는 윤리가 있다는 점에 놀란 것이다. 김사월의 효는 사신들에게 조선에 대한 인식을 새롭게 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나 이들은 조선의 문화와 역사를 있는 그대로 이해하기보다는 자신들의 중화주의에 입각하여 이해했다. 단군을 의도적으로 외면한 반면 기자에 대해서는 높은 관심을 보였는데, 바로 기자에 의해 조선이 개국되고 문명화되었다고 보았기 때문이다. 또한 조선 역사의 전개에 있어서 조선의 안정과 발전은 독자적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모두 중국에 의존하여 이루어졌다고 보았으며, 조선이 우수한 문화를 지닌 것도 모두 중국의 영향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조선조는 사신들과의 수창 경험을 통해 일찍부터 사장의 중요성을 직접 체험했다. 이에 사장의 강화를 위해 노력하였고, 나아가 사장으로 나라를 빛내고 다스릴 수 있다는 文章華國과 文章經國의 이념을 실현하고자 했다. 그리고 이러한 노력의 결과물이 바로 『황화집』이었다. 이러한 점에서 『황화집』은 바로 조선전기 문인들의 문학관과 그 자부심이 극명하게 드러난 산물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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