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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사회과학기술융합학회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예술인문사회 융합 멀티미디어 논문지 제8권 제7호
발행연도
2018.1
수록면
851 - 859 (9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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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실추는 1920년대 중반 미국유학 이후 어빙 배빗의 신인문주의를 받아들이며 이성의 감정에 대한 절제를 주장하는 보수주의 문학관을 갖추었으며 그 후 그것은 산문창작과 문학평론 등을 비롯한 그의 평생 문학 활동의 기준이 되었다. 이 때문에 양실추는 낭만주의 문학의 감정의 범람을 반대하였고, 이성과 감정이 조화를 이루는 중용적 문학이야말로 최상의 문학으로 평가하였다. 그러나 청화학교 재학시절 양실추가 창작한 시가 및 문학평론은 이와는 전혀 달리 매우 낭만주의적인 모습을 갖추고 있음을 알 수 있다. 그는 여러 시에서 이성에 대한 감정을 비롯, 마음껏 감정의 분출을 하였고, 강백정의『초아』에 대한 평론문인『초아(草兒)평론』과 빙심 시에 대한 평론문『번성(繁星)과 춘수(春水)』에서는 두 사람 시의 감정 부족과 산문적 성격에 대해 날카롭게 지적하였다. 양실추의 초기 문학이 낭만주의적 특징을 갖춘 이유는 민주와 자유를 부르짖던 신문화운동 시기의 사회적 배경, 미국식 민주주의 교육을 실시하였던 청화학교의 분위기와 이에 따른 구속 없는 문예 동아리 활동, 그리고 봉건제도를 탈피하여 새로운 미래를 꿈꾸었던 양계초, 문일다 및『창조사(創造社)』문인들의 문학적 성향에 영향을 받은 바 크다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양실추의 낭만주의는 시대가 가져다준 필연이라 할 수 있으며, 그가 미국유학 후 신인문주의자로 변모한 것 역시 낭만주의가 또 다른 형태로 진화한 것이라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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