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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양대학교 우리춤연구소 우리춤과 과학기술 우리춤과 과학기술 제13권 제1호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9 - 39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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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비야 공회당은 1930~1940년대 음악 예능, 언론, 교육 등 이벤트의 장으로 활용되며 당시 수많은 유명 아티스트들이 이곳에서 공연을 하면서 세간의 주목을 모으기도 하였고, 중일전쟁과 태평양전쟁 초기에는 정치적인 집회가 수없이 열린 장소이기도 하다. 또한, 단순한 연주회장으로서의 기능을 넘어서 정치적, 문화적 정보를 제공하는 미디어 이벤트의 거점이기도 했다. 당시의 히비야 공회당은 집회 시설로서의 공회당과 오락시설로서의 공회당이라는 정치성과 오락성을 동시에 띤 공공시설이었다. 최승희는 히비야 공회당에서 1936년 10월 22일부터 24일까지 제3회 신작 무용 발표회를 개최했는데, 이때는 이미 일본 제일의 무희로 자리매김하고 있었고 일류 무용가로서의 명성도 상당히 높아진 상태에서 이루어진 발표회였다. 당시 2・26사건의 여파로 많은 예술 행사가 취소되는 사회적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던 와중에, 무용계에서는 최고의 인기를 구가하던 최승희의 공연을 계기로 분위기 전환을 기대하고 있었다. 제3회 발표회에 대한 무용평은 공연이 끝나자마자 『아사히신문』과 『요미우리신문』 등 일본의 주요 일간지에 실리게 되었는데, 각 신문사의 무용평은 이전처럼 호의적이지만은 않았다. 하지만 그것은 서양적인 작품에 한해서이고 <코리언 댄스>, <트리오>, <아리랑>과 같이 민족적 색채가 짙은 작품에 대해서는 여전히 독자성을 나타내고 있다고 평가하였다. 1936년의 제3회 발표회는 이듬해부터 진행된 해외 순회공연의 시연회적 성격이 강한 공연으로 그녀의 작품 세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마련해 주었고, 민족의식을 되돌아볼 수 있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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