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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경상대학교 경남문화연구소 南冥學硏究 南冥學硏究 제48호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 - 42 (42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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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글에서는 단계마을의 역사 변천과 의미를 고대부터 고려시대까지 구명하고자 했다. 먼저 단계마을의 지명은 철광석의 산화철 현상인 ‘붉은’ 의미가 들어간 ‘적촌’‧‘단읍’‧‘단계’에서 유래했다. 단계의 고대 사회는 한 가야 소국을 구성하던 단위인 읍락이었으며, 신라에 의해 정복된 이후 赤村縣으로 편제되었다. 통일신라 때 菁州 闕支郡의 영현이 되었으며, 경덕왕의 한화정책에 의해 丹邑縣으로 개명되었다. 다음으로 940년 단읍현에서 단계현으로 명호 개정은 단계현이 국가 질서 내로 편제되었음을, 토성분정으로 지역 내의 세력 재편이 마무리되었음을 의미한다. 단계마을은 나말여초의 변화 속에서 단계현의 중심지가 되었다. 그 치소가 도평[양전]에서 단계마을로 옮겨졌기 때문이다. 단계현은 1254년의 몽골 침략, 皆品部曲의 山陰縣으로 移屬, 왜구의 침입으로 위상에 큰 변화를 겪었으며, 단계마을도 그러한 변화로부터 벗어날 수 없었다. 끝으로 許邕은 단계마을의 역사에서 처음으로 그 지명에서 취한 단계로 호칭되었으며, 토성 인물이 존재하지 않는 단계마을 역사에서 가장 크게 영향을 끼친 인물이다. 허옹은 1337년에 처향 단계로 은거하여 스스로 迂軒이라 칭하였으며, 당시 일반적인 男歸女家의 혼인 형태에서 본다면 귀향이라 할 수 있다. 허옹은 1345년에 다시 벼슬살이에 나섰다가 1348년 무렵에 다시 단계로 낙향하고 그 직후 법물리로 이거하였으며, 1357년에 세상을 떠났다. 우헌 허옹이 단계에 입향함으로써 불러온 단계 사회의 변화는 결코 적지 않았다. 여말선초 우헌 허옹의 아들 허소유와 許繼道, 사위 안동 장씨 張綱, 외손서 상산 김씨 丹邱齋 金後가 단계마을과 법물리에 은거하거나 이주하는 계기가 되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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