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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정토학회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정토학연구(淨土學硏究) 제14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25 - 355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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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8년 강원도 건봉사는 『건봉사 사적(乾鳳寺 事蹟)』이라는 寺誌를 간행하였다. 만해 한용운이 편찬한 이 책은 1927년 안진호의 『奉先寺誌』를 뒤이어 간행됨으로써 일제강점기 本末寺誌 편찬이라는 큰 흐름을 이끌었다. 이는 조선 불교계를 30본산으로 규정한 사찰령 체제 아래 각 본산을 중심으로 하는 본말 체제의 강화를 보여주는 실례이기도 하다. 일제강점기 사지 편찬의 대표자였던 안진호와 특징있는 사지편찬을 했던 포광 김수영 등과 더불어 만해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일제 강점기 본말사지 편찬의 새로운 기원과 도전이었고 이로 인해 다양한 본말사지가 편찬되는 계기를 만들었던 것이다. 그럼에도 한용운의 『건봉사 사적』은 『봉선사지』와 이후의 다른 사지와 비교하여 상대적으로 소략한 형태의 寺誌라 할 수 있다. 이는 본말체제에 대한 한용운의 비판적 의식과 합리적이고 역사적 사실에 충실한 사료만을 선택하려는 태도와 1878년 건봉사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에 따른 것이다. 또한 일제 총독부 당국의 검열에 따른 누락과 소략한 서술을 할 수 밖에 없었던 측면도 있었다. 또한 건봉사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萬日會 서술 등이 소략하고 邑誌 등 다양한 자료를 광범하게 참조하지 못한 점을 들 수 있다. 그러나 연도표기 방식에서 일본 연호를 사용하지 않은 점, 일제의 불교정책의 핵심이라 할 수 있는 寺刹令 관련 서술을 최소화하고 있다는 점은 만해 한용운의 편찬 의도를 잘 보여주고 있다. 이러한 한계는 『건봉사 사적』의 편찬방식이 연표식 정리방식과 짧은 편찬기간 그리고 1878년 화재로 인한 자료의 일실과 편찬자의 입장을 배제하려는 述而不作의 태도에서 연유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나 만해 한용운이 역사적 사실에 근거한 『건봉사 사적』 편찬에 대한 자부는 30년이 채 되지 않아 여실히 증명되었다. 1950년 6.25전쟁으로 건봉사를 비롯하여 양구 심곡사와 양양 명주사 등 사찰들이 불타면서 사지편찬이 왜 필요한가를 웅변적으로 증명하였던 것이다. 한편 만해 한용운은 『불교유신론』의 발간으로 당대 불교개혁을 주창하는 불교계 인물로 부각되었고, 시집 『님의 침묵』의 발간으로 민족적 시인으로 거듭나게 되었음은 주지의 사실이다. 이에 더하여 『건봉사 사적』을 편찬함으로써 일제강점기 불교사 연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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