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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동양고전학회 동양고전연구 동양고전연구 제22호
발행연도
2005.1
수록면
215 - 250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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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초기의 고승인 법인국사(法印國師) 탄문(坦文 : 900~975)의 비문으로, 고려 경종 3년(978)에 건립되었다(국보 제106호). 비문을 지은이는 당시 광록대부(光祿大夫) 한림학사(翰林學士)로 있던 김정언(金廷彦)이고 글씨를 쓴 사람은 사천대(司天臺) 박사 한윤(韓允)이다. 전체 높이 450㎝, 비신 높이 240㎝, 너비 116.5㎝, 두께 29㎝, 비문 글자 크기 1.5㎝이며, 비문의 글자는 46행×99자로 모두 4,500여 개의 글자가 새겨져 있다. 현재 비신의 하단부 세 곳이 작은 크기로 떨어져 나갔을 뿐 전체적으로 비문의 내용을 판독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다. 더욱이 떨어져 나간 부분도 조선 말기에 나온 유연정(劉燕庭)의 해동금석원(海東金石苑)에 비교적 온전하게 판독되어 있어, 판독할 수 없는 글자는 현재 30여 자에 불과하다. 떨어져 나간 부분은 적어도 1919년 조선금석총람이 나오기 이전까지는 온전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문체는 신라말의 대학자 고운(孤雲) 최치원(崔致遠 : 857~?)의 사산비명(四山碑銘)을 많이 참조한 듯, 똑같거나 비슷한 사륙변려체(四六騈儷體)의 문투가 도처에 보인다. 김정언이 찬한 여타의 비문들도 상투적인 문투가 많아 그 문학성은 높이 평가하기가 어렵다. 글씨는 당시 크게 유행하였던 전형적인 ‘당해(唐楷)’, 즉 구양순체(歐陽詢體)로 되어 있어 신라 말, 고려 초기의 서예사 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본고에서는 2005년 5월 22일, 문화재청의 허가를 받아 직접 뜬 탁본을 저본(底本)으로 하고, 조선금석총람, 한국금석전문 등을 부차적인 자료로 하여 교정에 임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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