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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불교미술사학회 불교미술사학 불교미술사학 제23권
발행연도
2017.1
수록면
61 - 91 (31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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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 연구는 불곡마애좌상의 조성에 신라의 토착신앙이 영향을 끼쳤을 것이라는 점에 근거하여 그 존명과 조성배경을 신라의 불교공인과 관련지어 해석해보는데 목적이 있다. 불곡마애좌상에서 주목할 만한 특징은 삼국시대 존상 중에서는 최초로 감실에 안치되었다는 점과 머리카락 혹은 두건을 어깨까지 늘어뜨린 듯한 독특한 머리 부분의 표현, 소매 속에 감춘 손, 버선을 신은 것처럼 묘사된 발 등이 강조된 점이다. 이러한 특징들은 일반적인 불상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표현으로, 신라의 토착 신앙과 관련이 있는 존상을 상징하는 특징일 것으로 생각된다. 신라는 불교의 수용과 공인이 가장 늦게 이루어진 국가로, 토착신앙이 신라사회에서 막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였을 것이다. 따라서 불교라는 신흥 종교가 신라사회에 뿌리내리기 위해서는 기존의 토착신앙과 유사한 친근함을 전제로 할 필요가 있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따라서 불상의 형식을 차용하여 토착신상을 조성함으로써 불교와 토착신앙의 자연스러운 습합을 꾀하였을 것으로 추정되며, 불곡마애좌상은 이러한 시대적 상황을 배경으로 조성된 존상일 것으로 판단된다. 이를 통해 보았을 때, 불곡마애좌상에서 기존 불상과 다르게 표현된 도상은 불교수용 이전 토착신앙에서 숭배된 존상과 관련 있는 요소일 것으로 추정되며, 불상의 양식을 빌어 신라 고유의 토착신을 표현하고자 하였던 것으로 생각해볼 수 있다. 신라에서는 지리적 혹은 사상적으로 중요한 위치를 점하고 있는 영산을 숭배하는 산악신앙과, 이 산에는 성모가 상주하며 신라를 지켜준다고 믿는 성모신앙이 발달하였다. 특히 불곡마애좌상이 위치한 남산은 통일 이전 왕경오악 중에서도 남악에 해당되었다. 불교공인 이전의 남산은 시조인 박혁거세의 탄강지로 성역화 되어 왕권강화의 구심점 역할을 하였으며, 불교공인 이후에는 신라 왕실에 의해 구현된 불국토로서 신앙의 대상이 되었다. 현재 가장 많은 불교유적이 남아있는 경주 남산에 사찰이 창건되기 시작한 연대는 7세기 이후이다. 앞에서 서술했듯이 남산은 신라 왕실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후대의 기록에까지 ‘남산신’이라고 명시된 별도의 숭배대상이 존재했을 만큼 토착신앙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6세기 중엽이 되면 경주의 평지와 강변을 중심으로 사찰이 창건되고 완전한 형태의 불상이 조성되는데 반해 남산에서 불교와 토착신앙이 습합된 형태의 존상이 확인되는 이유도 남산이 가지는 특수한 의미와 관련이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경주 남산은 신라 왕실과 관련된 매우 중요한 장소였으며, 후대의 기록에까지 ‘남산신’이라고 명시된 별도의 숭배대상이 존재했을 만큼 토착신앙이 깊게 뿌리내리고 있었다. 이는 불교를 공인하고 적극적으로 활용한 신라왕실에서도 남산에 대해서만큼은 일정부분 그 보수성을 유지했음을 암시하는 사례일 것으로 추정된다. 즉, 불곡마애좌상은 경주 남산이 불교화 되어가는 과정을 나타내는 단적인 예로, 불교공인 이후 남산이 지니고 있던 토착신앙적인 면모는 비교적 늦은 시기까지 그 정체성을 유지하였을 것으로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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