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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제37권
발행연도
2013.1
수록면
219 - 248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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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는 당대 문단의 흐름 속에서 月沙 李廷龜(1564~1635)와 白沙 李恒福(1556~1618)의 교유를 통해 상호간의 문학적 태도와 교감을 파악하는 데 목적을 두었다. 기존의 연구가 월사와 백사의 무술년 사행에서 시작된 정치적인 동료였음을 밝히는데 그쳤다면 본고는 여러 자료들의 분석과 비교를 통하여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새로운 사실을 발견하였다. 기존 연구에서는 무술 사행에 백사가 처음에 상촌 신흠을 부사로 천거했으나 선조가 반대해서 월사가 가게 된 것으로 소개하였다. 그러나 실록 기사를 통해 백사가 원래 염두에 두었던 인물이 월사임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시작된 무술년의 사행으로 두 사람의 교유는 더욱 돈독해졌다. 무술 사행 이전에도 이미 두 사람의 인연이 있었던 사실은 제문을 통해서 확인하였다. 특히 사행 기간 내내 이어진 차운은 서로의 문학적 능력과 선호를 파악하고 충고도 할 수 있는 관계로 발전하였으며 문학적인 교감을 나누었다. 이후 그들은 평생 정치적 문학적 동반자였다. 월사는 백사를 위해 묘지명을 지었으며 신도비를 지은 상촌 신흠이나 행장을 지은 계곡 장유보다도 훨씬 백사를 인정하고 추숭하였다. 이것은 월사의 문학적 인식이 상촌이나 계곡과 다름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월사와 백사는 이백의 시를 높이 평가하였으며 월사가 선별한 이백의 시를 백사가 쓰고 월사가 발문을 지은 「이백시초」를 만들기도 하였다. 월사와 백사의 이백시 선호는 이들의 호방한 기질과 시적 경향에 결부시킬 수 있다. 월사는 백사가 지은 <율곡비명>이 논란을 야기하자 누구보다 적극적으로 백사의 문장을 옹호하는데 앞장섰다. 작자로서의 역량과 원작의 가치를 인정하고 수정보다는 몇 마디의 가필만 하자고 주장하였다. 백사의 해학적 기질이 드러나는 「조천록」의 일부 기록도 실상은 재기가 뛰어난 월사와 만나 상승효과를 일으킨 것이다. 어지러운 정치 현실에서 물러나 떠난 도봉산 유람에서 달밤의 아름다운 경치를 놓칠 수 없다며 백사가 발로 차서 월사의 잠을 깨우는 장면, 이명한을 시켜 출사표와 적벽부를 읊게 하는 모습에서도 허물없이 교유하는 그들의 돈독함과 호방한 기질이 엿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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