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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역한문학회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한문학논집(漢文學論集) 제30권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03 - 320 (1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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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세기에 당시 실제로 행했던 冠·婚·喪·祭禮 를 기록으로 남긴 문헌 자료는 매우 적을 뿐만 아니라 이를 토대로 한 연구 또한 극히 적다. 그러므로 필자는 16세기에 실제로 행했던 冠·婚·喪·祭禮 를 기록으로 남긴 李文楗(1494~1567)의 『黙齋日記』와 柳希春(1513~1577)의 『眉巖日記』 등을 중심으로, 이들 문헌 자료에 나타난 冠禮, 婚禮, 喪禮, 祭禮에 초점을 맞추어 논의하였다. 본고에서 논의한 사항들을 종합하여 결론으로 삼으면 다음과 같다. 관례의 경우, 16세기에는 대개 약식으로 치렀던 것으로 보인다. 혼례의 경우, 16세기에는 『주자가례』를 主로 하되, 우리 고유의 혼속이 가미 혼용되어 치러졌다고 하겠다. 특히 반친영이 그렇다. 그리고 이 시기에는 木雁 대신 산 기러기의 사용이 흔했던 것 같다. 상례의 경우, 16세기에는 특히 그 절차가 체계적으로 정비 시행되지 못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여기서 주목할 것은 소렴과 시묘이다. 소렴은 16세기에는 亡者가 죽은 당일에 대개 한 것 같다. 그리고 『주자가례』에도 없는 시묘살이를 한 것도 눈길을 끈다. 이 시기는 염습, 조문, 시묘살이 등에서 조선 후기와 차이를 보이고 있다. 제례의 경우, 16세기에는 『주자가례』방식의 제사는 완전하게 적용되지 못하고, 이전부터 행해지고 있던 東俗을 부분적으로 수용하면서 시행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16세기의 제례에서 눈길을 끄는 것은 제대로 안 지켜졌던 봉사대수와 『주자가례』에도 없는 生諱日祭, 그리고 일부 지역이나 가문에서 행했던 불교적 색채가 강한 影堂祭와 윤회봉사 등이다. 특히 윤회봉사를 주목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윤회봉사는 묘제 때에도 행하였다. 16세기는 관, 혼, 상, 제례의 경우, 『주자가례』가 완전히 정착하지 못한 시기라 할 수 있다. 이상의 논의를 통해 16세기의 관례, 혼례, 상례, 제례를 파악할 수 있었을 뿐만 아니라, 조선시대 의례(특히 관·혼·상·제례)의 통시적 연구에도 일조를 할 수 있다. 그런바 이 같은 논의는 예학사적으로나 의례사적, 그리고 민속학적으로도 그 의미가 크다고 사료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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