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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널정보
한국고문서학회 古文書硏究 古文書硏究 제46권
발행연도
2015.1
수록면
153 - 182 (30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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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고창의 향리 가문 출신인 신재효가 19세기 후반에 판소리 창자들의 교육에 헌신한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그의 교육은 창자로부터 일정 사례를 받고 이루어진 것이 아니고 이들을 기거하는 경비까지 부담할 정도로 헌신적인 것이었다. 여기에는 여성 제자들의 연행을 주선하고 경우에 따라서는 판소리에 전업하려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것까지 포함된다. 더욱이 그는 지역사회를 위해서도 적지 않은 돈을 기부하였는데, 그의 기부 활동은 35세 때부터 시작하여 66세가 되는 1876년까지 계속 이어졌다. 이 일련의 사실들이 신재효의 재부에 대한 우리들의 관심을 촉발하는 것은 당연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 실태는 사실상 구전 전승에 기초한 것으로서 구체적인 내용이나 의미에 대하여는 밝혀진 것이 거의 없다. 전승되는 이야기들은 막연하게 신재효가 부친 신광흡의 유산을 물려받아 살림이 넉넉했고 나아가 근검으로 재산을 일구어 창자들을 교육시켰다고 한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는 거대한 자산가로 그려지기도 한다. 그런데 이 같은 구전은 여전히 애매하며 신재효와 부친, 그리고 후손들의 그것이 뒤섞여 있기도 하다. 그의 재부에 대하여 연구자들이 쉽게 거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것이 구체적인 논거에 기초하지는 않은 것이다. 사실상 여기에 대한 연구는 없다고 하여도 좋을 것이다. 이 연구는 바로 이러한 사실을 비판하면서 그 구체적인 실태를 밝히고 이어 그 의미를 분명히 한 것이다. 그렇다고 이 연구는 재부를 밝히는 것만으로 판소리 창자의 교육에 대한 그의 헌신과 역할의 중요성이 드러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하면서도 일단 그가 재부를 어떻게 축적하고 경영하였는지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작업이 선행되어야 한다고 보았다. 한편 이 같은 작업이 가능한 것은 재부의 축적과 관련된 일련의 문서들을 최근 발굴하였기 때문인데, 이 같은 문서들이 전승되고 있는 것은 매우 고무적이다. 그렇지만 이 연구에서 중점을 두는 것은 그의 재부와 이를 기초로 한 판소리 교육과의 상관관계이다. 이러한 전제 아래 이 연구는 그의 경제 기반과 경영을 수입과 재부 축적, 그리고 기부와 소비라는 큰 구도 위에서 논의하였다. 한편 그가 창자의 교육에 헌신한 시기는 이른바 popular 문화가 크게 확산되기 시작한 시기이라는 점도 주목하였다. 그렇다고 그가 단순히 시대의 조류를 추종하거나 반영했다고 하는 것은 아님을 분명히 했다. 연행에 대한 그의 다양한 실험은 이 같은 확산을 촉진하고 새로운 방향을 만들어 나갔다. 이와 관련하여 이 시기는 구체제의 동요와 이에 따른 긴장이 고조된 시기이기도 했다는 점도 강조하였다. 이러한 환경 속에서 재부의 축적만이 아니라 안정성을 확보하기 위한 그의 태도도 주목하였다. 이것은 그가 직면한 가혹하면서도 불안한 환경에 대응하는 노력으로 간주하였는데, 이것은 그의 사후 그의 가족이 겪은 곤경을 통하여 드러냈다. 이 같은 전제 아래 수입과 재부의 축적을 이서로서의 수입과 이식 행위, 그리고 토지 구입과 축적으로 나누어 분석하였다. 이어 소비의 경우 그 내용을 알기는 어렵지만, 일단 기부 등 중요 사안을 중심으로 정리하고 검토하였다. 그리고 그가 여성 제자들의 교육시키는 헌신에는 이들을 경제적으로 뒷받침하는 것도 포함되어 있음을 드러냈다. 한편 이 같은 재부 관리와 관련된 신재효의 신중한 자세는 19세기 후반 향리 사회가 직면한 불안과 연관되며 신재효도 늘 의식하여야 하는 살아 있는 현실이라고 보았다. 한편 그의 검약 수준이 통상 기대되는 것을 훨씬 넘어선 것도 주목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인색하다는 비난 대신 주위로부터 끊임없이 칭송을 받은 것도 중요하다고 보았다. 그는 일상생활에서 늘 인심을 잃지 않는 방향으로 신중하게 재부를 축적하는 한편 주위에 계속해서 인정을 베푼 모습을 보여준다. 사망하고 불과 11년 후 고창은 동학농민봉기의 중심지에 포함되었다. 이미 임술농민봉기를 겪었던 신재효로서는 계속해서 자신을 둘러싼 현실이 악화되어 가는 것을 감지했다고 보았다. 그의 경제 행위도 이 같은 신재효의 현실 인식과 연관 지어 접근하여야 함을 강조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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