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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65호
발행연도
2009.1
수록면
415 - 460 (4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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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논문은 중일전쟁 이후 조선 내 민간인에게 판매되었던 전시공채의 실태를 고찰한 것이다. 전시공채는 인플레이션 억제와 전비조달이라는 두 가지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발행한 것으로 본문에서는 다음 두 가지를 중점적으로 해명하였다. 첫째 조선에서 발행되었던 전시공채를 국채와 전시채권으로 나누어 각 종별 운용방식을 정리하였다. 국채는 고액국채(이표채)+소액국채(할인채)가 항상 짝을 이루어 발행되었다. 전자가 주로 유산층을 대상으로 하였다면, 후자는 그보다 구매력이 낮은 계층에게 소화되었다. 전시채권은 저축채권류와 보국채권류가 발행되었는데, 양자는 추첨을 통해 채권구입자에게 할증금을 부여함으로써 채권소화율을 높이고자 하였다. 둘째 각 회차별로 전시공채 발행액을 정리하여 발행추이를 보다 정밀하게 분석하였다. 조선에서 발행된 전체 전시공채 중 국채와 저축채권이 약 80% 정도를 차지하였고, 발행시기는 1941~43년에 집중되었다. 특히 전시공채는 시중에 현금이 풍부한 시기인 상여금기를 기점으로 집중 발행되는 특징을 보였다. 조선 내 국채구입을 민족별로 구분하면, 재조일본인이 조선인보다 훨씬 많이 구입한 것으로 나타난다. 그러나 기본적으로 공채구입은 경제력에 조응될 수밖에 없다는 점을 고려하면, 이는 양자의 경제력 차이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당시 일본인에 비해 경제력에서 열악했던 조선인에게는 시간이 지날수록 더 강한 강제력이 행사될 수밖에 없었고, 이는 조선인 공채 구입액의 증가추이에서 알 수 있다. 그러나 조선인에게 발행된 전시공채를 일방적인 강제만으로 규정할 수는 없다. 조선인 유산층 일부가 이를 ‘자발적인 충성의 시험판’으로 적절히 활용했을 가능성을 고려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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