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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성균관대학교 대동문화연구원 대동문화연구 대동문화연구 제71호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329 - 364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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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고에서는 먼저 근대일본의 음악을 둘러싼 담론을 분석함으로써 노래가 내셔널리즘 형성에 유용한 도구로 발견되는 경위와, ‘국악(national music)’이라는 관념이나 운동, 제도를 성립시키는 새로운 개념으로서의 ‘창가’와 ‘민요’의 성립과정을 좇고자 한다. 그리고 식민지조선으로의 개념의 연쇄를 통해 식민지의 소리가 어떻게 관리되고 거기에 맞서는 집단의 저항의 소리들이 어떻게 구성되었는지를 살펴보았다. 메이지 일본은 학교, 군대라는 새로운 공동체를 창출하고 국민교육의 일환으로 창가라는 남성화된 ‘국민의 소리’를 제창이라는 형태로 성원들에게 신체화해 갔다. 그리고 향토성을 표상하며 아래로부터 수렴된 ‘민요’와 충군애국의 국민정신 구축을 위해 위로부터 철저하게 강제된 ‘창가’는, 때로는 서로 길항관계에 있으면서도 다양한 지방의 소리로 중앙의 추상적인 소리를 보충하면서 ‘상상의 공동체’로서의국민의 소리를 완성해 갔다고 할 수 있다. 한편, 서양음악의 인위적인 이식을 통한 조선에서의 노래의 근대는, 주로 애국심함양과 자주독립이라는 국가적인 과제를 담아 의례와 함께 불린 ‘애국가’의 형태로추구되었다. 하지만 식민지기에 본격적으로 출발하는 학교교육을 통해 ‘창가’교육이 강력히 시행되어 가고, 통속교육을 통해 속요를 통제하면서 조선의 소리는 억압되었고 결국에 제국의 소리로 편재되어 갔다. 그렇지만, 조선어 개사가의 유행은 갈수록 일본어와 밀착된 창가 개념에 균열을 가하고, 해방 후에 새로운 개념이 제도적으로 정착하면서 재구축되어 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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