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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문 기본 정보

자료유형
학술저널
저자정보
저널정보
국민대학교 한국학연구소 한국학논총 한국학논총 제34권
발행연도
2010.1
수록면
51 - 86 (36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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百濟史 硏究에서 建國神話를 복원하는 노력은 백제국가의 초기모습에 대한 접근뿐 아니라 夫餘․高句麗와의 문화 전파 및 교류 양상 등 그 계통성을 추정할 수 있는 실마리를 제공한다. 그동안 전승 자료의 분석을 통한 역사적 탐색은 백제 건국신화의 원형을 복원하고 그것을 백제초기 사회와 연관하여 분석하는 노력으로 이어졌다. 또한 건국신화의 형성과 변천과정을 初期王系의 변화와 결부시키면서 백제 건국의 주체 세력과 그 계통을 해명하였으며, 나아가 초기백제의 국가형성과 사회상에 접근하는 등 연구의 범위가 심화․확대되었다. 백제의 始祖傳承은 건국의 경로 및 과정의 복잡성을 반영하는 것으로 보며, 夫餘系 神話의 재탄생 측면에서 접근하였다. 또한 溫祚가 東明王廟를 세워 숭배한 사실은 동명을 통하여 왕실의 神聖性을 구현하려는 것으로 풀이된다. 본래 온조전승은 日神의 후예인 온조부족과 地神族 계통의 토착부족이 결합하여 형성된 始祖神話로 이해된다. 온조 시조전승은 고구려와의 친연성을 강조하며, 비류 시조전승은 부여 계통과의 연결을 강조하였다. 中國史書의 仇台전승은 백제의 부여계 시조설이 부인되지 않고 오히려 國內史書보다 강조되었다. 日本 古史上에 전하는 都慕전승은 넓은 의미에서 부여계 시조로서 관념되었을 가능성이 크다. 철기문화를 수반한 백제의 온조와 비류집단은 범부여계 출신으로 卒本지역에 정착하였다가 일종의 무사단을 이끌고 남하하였는데, 비류집단은 서해연안을 따라 내려오는 海路를, 온조집단은 陸路를 통하였던 것으로 추정한다. 비류 시조전승은 고이왕대에 재음미되거나 독자의 시조전승으로 체계화되었던 반면, 온조 시조전승은 古爾王系와는 다른 혈연집단인 近肖古王系가 등장하면서 문자로 정착되었던 것으로 본다. 이때 정착되었던 백제 건국신화는 東明-溫祚의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현전하는 朱蒙-溫祚로의 변모는 백제 멸망 후 부여의 동명을 고구려의 鄒牟로 이해하는 인식이 반영되었던 신라 통일 이후로 상정한다. 始祖傳承의 생성과 변화가 역사적 산물이라고 할 때, 백제 건국신화를 구성하는 시조전승을 초기 왕실 내의 지배세력 교체를 비롯한 백제사의 전개과정과 결부시켜, 그 역사적 원인과 의미에 대한 깊이 있는 탐색이 필요하다. 이와 함께 백제 왕계를 구성하는 혈연집단의 계통과 형성과정 등에 대한 세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또한 백제의 시조전승이 갖는 특성과 의미를 고구려나 신라의 그것과 비교하여 접근하려는 노력이 더욱 요구된다. 나아가 중국과 일본을 포함하는 고대 동아시아 세계의 시조전승과 견주어 접근한다면, 백제 뿐 아니라 삼국의 시조전승을 폭 넓게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다. 시조전승을 바탕으로 祭儀가 행해지므로 백제의 건국신화와 제의가 고대국가의 성장과정에서 어떠한 사회구조 속에서 형성․변화하고 체계화되어 갔는가에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부족한 자료의 한계를 보완하기 위해서는 시조전승 관련 자료의 書誌學的 이해를 높이는 연구와 함께, 고고학 발굴성과의 활용에 대한 노력도 요구된다. 그리고 백제 시조전승이라는 공통된 주제에 대한 관련 학문간 연구 성과의 공유와 적극적인 교류는 상호이해의 증진과 함께 연구 범위의 외연을 넓히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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