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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외국어대학교 지중해지역원 지중해지역연구 지중해지역연구 제10권 제4호
발행연도
2008.1
수록면
31 - 58 (28pag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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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까지 프랑스의 ‘좋은 시절’에 나타난 안티페미니즘 담론을 개인주의적 페미니즘의 확산, 여성참정권 운동의 전개, 당시 부흥하고 있던 프랑스 가톨릭교회와의 상관성 속에서 살펴보았다. 확실히 19세기에 등장한 페미니즘은 여성들로 하여금 “새로운 직업과 자유에 근접”할 수 있게 만들었으며, “일할 권리, 여행할 권리, 사랑할 권리를 더욱 강력하게 요구”하도록 뒷받침하였다. “하지만 이제 겨우 시작된 이런 변화의 움직임은 어느 곳에서나 종교적ㆍ도덕적ㆍ정치적 각도에서 엄청난 저항에 직면했다. 이런 저항은 ‘사라지기를 한없이 계속하고 있는 앙시앵 레짐’의 폐허에 의지하고 있었으며, 정당화 작업이나 책략 면에서 변화를 거듭하고 있었다.”(Perrot(a) 2002: 841) 이러한 상황에서 여성을 사적인 공간 속에 변함없이 묶어두려고 하였던 안티페미니즘 담론은 성적인 구별이 없어지는 상황에 대한 남성의 두려움을 반영하고 있었다. 엄격히 구분된 영역을 전제로 이루어지는 성별적인 기능 및 역할이 와해되는 것은 여성이 스스로 여성이기를 포기하는 것으로 비춰졌으며, 영역의 침범을 통하여 남성성을 획득한 여성의 존재는 부르주아적 사회의 도덕성을 위협하는 것으로 간주되었다. 그러한 상황은 남성성의 지속 가능성 여부를 의심하게 만들 정도의 두려움을 불러 일으켰다. 개인적인 동시에 집단적이고, 현실적인 동시에 환상적인 그러한 두려움은 페미니즘에 대한 공격을 넘어 페미니즘이라는 이데올로기가 등장하기 이전의 사회에 대한, 만약 그것이 불가능하다면 페미니즘의 영향력이 본격적으로 발휘되기 직전의 사회에 대한 미련으로 나타났다. 근대적 가치가 반근대적 신념과 불가분의 관계를 맺으면서 동시에 존재하고 있었던 것이다. 이처럼 ‘좋은 시절’의 안티페미니즘은 과거에 대한 향수를 바탕으로 자신의 논리를 구축하려고 하는 반동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었다. 당시의 페미니즘이 인간적인 것과 남성적인 지속적으로 혼동한 결과 공통의 언어를 발견하는데 실패하고 있었다고 한다면, 안티페미니즘 역시 그러한 두 가지의 요소들을 구분하지 못하는 오류를 범하면서 남성적인 것과 여성적인 것 사이에 확고한 경계선을 설정하려 하였다. 그 결과 여성을 하나의 개인적 주체로 설정할 경우 여성의 남성화가 이루어질 것이며, 그러한 여성에 의하여 프랑스가 지배를 받을 것이라는 사고가 확산되었던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당시 남성에 의하여 여성을 지배하고 종속시키려는 의지가 실제로 존재하고 있었음을 인정하는 것이었다. 그런 까닭에 여성참정권 역시 인정할 수 있는 대상이 될 수 없었다. “여성들이 어떤 지위를 획득할 수 있는 것이 여성들에게 그러한 지위를 부여하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Sledziewski 1991: 44)는 것이 주된 이유였다. 하지만 여기에서도 역효과가 나타났다. 소수의 페미니스트들의 주장에서 비롯된 여성참정권 운동은 안티페미니즘의 공격의 결과 오히려 여성참정권 인정 및 획득의 필요성을 확대시켰다. 1944년 프랑스에서 여성참정권이 인정될 때까지 그것은 끊임없이 정치적 담론의 한 주제를 형성하였으며, 그 과정에서 페미니즘은 보다 확고한 정치적 위상을 획득할 수 있었다. 여성참정권에 반대하는 안티페미니즘 담론 중 한 가지가 가톨릭적인 심성을 가진 여성에게 참정권을 부여할 경우 교권주의적 반동이 초래될 것이라는 우려였지만,(김용자(b) 2001: 90) 프랑스 가톨릭교회는 적어도 여성에 대한 관점에서 그러한 안티페미니즘과 별다른 차이를 보여주지 않았다. 여성과 가족의 관계에 대한 전통적인 교리의 내용을 거의 변화시키지 않은 상태에서 가톨릭교회는 페미니즘의 주장에 대하여 종교적인 동시에 민족적인 차원에서 대응하였다. 페미니즘이 여성에 의한 전제정치로 나아가게 만들 것이라는 두려움 역시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이와 관련해서도 역효과는 나타났다. 그러한 남성들의 두려움 곁에서 전투적인 페미니즘이 발전하였으며, 동시에 진정한 의미에서의 페미니즘 운동이라 규정할 수는 없지만 자선사업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여성의 사회적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되었다. 여성을 가정이라는 사적 공간 속에 머무르게 만들었던 여성의 역할과 관련된 담론을 내세워 여성들은 사회적 공간으로 진출하였으며, 그 역할에 관한 담론을 부정하고 도전하였다. 비록 ‘대전쟁’으로 인하여 안티페미니즘 담론이 성공을 거둔 것처럼 나타나기는 하였지만, 이미 시작된 여성들의 ‘벗어나려는’ 시도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한 시도는 페미니즘에 의하여 자극을 받기도 하였지만, 안티페미니즘에 의하여 보다 활성화될 수 있었다. 이러한 점은 결국 ‘좋은 시절’ 안티페미니즘의 역효과라 할 수 있다. 여성의 정치적 정체성과 문화적 정체성에 대한 혼동, 여성의 개인주의적 가치관과 공화주의적 이념과의 혼동, 나아가 인간적인 것과 남성적인 것과의 동일시 등은 안티페미니스트들로 하여금 가시적인 현실과 과거에 대한 향수 사이에서 방향성을 상실한 채 갈팡질팡하게 만들었던 것이다. ‘좋은 시절’ 프랑스의 안티페미니즘은 공적인 공간으로 진출하려는 여성의 노력을 여성의 남성화라고 규정하면서 격렬하게 공격하였다. 만약 당시 여성의 입장에서 남성이 요구하는 여성으로 남을 것인가, 아니면 그러한 공격에도 불구하고 남성화된 여성이 될 것인가 하는 두 가지의 과제 중 어느 한 가지를 선택해야만 하였다면 그것은 당시 여성들이 자신들 앞에 놓여 있는 모순적 상황을 철저하게 인식한 결과였다. 이는 당시 안티페미니즘의 가장 커다란 역효과였으며, 남성 안티페미니스트들이 갖고 있었던 향수 어린 “환상들은 언제나 아쉬움들과 두려움들로부터 만들어진 것처럼”(Maugue(b) 1991: 535) 보일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안티페미니즘의 역사가 페미니즘의 역사보다도 훨씬 흥미롭게 느껴지는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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